<노란봉투법을 향한 어느 칼럼에 대한 소감>

by 성대진

○다음은 노란봉투법의 부작용 중에서 하청노조와 원청사업주 간에 직접 교섭을 허용하는 경우의 문제점을 주로 원청사용자의 시각에서 지적한 김동호 중앙일보 논설위원의 칼럼입니다. 찾아보니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경제 문제에 대하여 정통한 분입니다. 경제학 박사답게 경제학적인 분석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세상은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도 있기 마련이며, 그 잘 모르는 분야가 일정한 사안을 지배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김동호 논설위원은 ‘시장의 역습’이라는 경제학적 부작용을 과도한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의 증가에서 예측합니다. 이 논리는 하청노조가 요구하면 당연히 원청사용자는 응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원청사용자가 응할 의무도 없고, 실제로도 응하지 않는다면 하청노조의 요구는 그저 공허할 뿐입니다.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어야 응할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무적으로는 단체교섭을 하청노조가 요구하면 원청사용자는 응당 응해야 하는가, 그리고 설사 응한다고 해서 그 과정은 순탄할 것인가, 하청은 복수의 노조가 거의 필연적인데, 그들 간의 관계는 어떨 것인가 등 실무적 법리적 문제점에 대하여는 칼럼의 내용에 없습니다.


○그 이전에 노란봉투법이 과연 진보성향의 여당의 의견만이 반영되어 제정된 것인가부터 생각해 봐야 합니다. 노란봉투법의 핵심적 내용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제2호 소정의 ‘실질적 지배력’ 유무는 실은 이미 대법원(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이 '실질적 지배력설' 이론에 입각해서 원청의 하청 소속 근로자에 대한 교섭 의무를 인정한 법리를 수용한 것입니다. 가장 보수적인 법해석권자인 대법원은 바로 위 판결에서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하여 고용사업주인 사내 하청업체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경우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 금지 규정을 적용 받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다시 경제학자 출신에게 경제학적으로 설명을 해보자면, 하청기업이란 실제로는 아웃소싱의 방식으로 외주화한 기업이 대부분입니다.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따라 비핵심 분야를 외주화한 기업이 바로 하청이기에 경제학적으로는 광의의 동일기업 내부의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하청이 단체교섭을 요구한다고 하여 당연히 원청사용자가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 수백개 하청기업의 노조가 요구하는 단체교섭에 응해야 하는 경우는 하청노조에게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는 경우이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실질적 지배력 유무는 궁극적으로는 법원이 결정합니다. 하청노조에게는 법원의 최종판결을 받기까지 산 넘고 물을 넘어야 합니다. 그 기간 동안 시간과 돈의 지출은 필연적입니다.

○하청기업은 다수 존재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 하청기업들에 속한 개별기업노조들은 본 무대에 오르기 전에 교섭창구단일화절차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렇게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노조의 힘이 약하면 원청사용자는 단체교섭에서 무성의로 일관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현대차노조가 극성을 부린 것은 파업을 통해 생산라인이 선 경우에 사용자가 입는 막대한 손해 때문입니다. 은행노조가 파업을 해도, 언론노조가 파업을 해도 효과가 미미했던 것은 손해가 의외로 적기 때문입니다. 근자에 원청사용자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한 경우는 모두 이들이 생산라인을 실제로 잡고 있는 경우입니다. 말하자면, 원청사용자가 손해를 입을 수 있어야 비로소 원청사용자가 하청노조를 상대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들 하청기업은 예전에는 원청기업의 일부였습니다.


○한국의 노조가입률은 13% 내외입니다. 그중에서 하청노조의 비율은 더욱 낮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파업을 해서 원청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는 경우, 즉 영향력이 높은 경우는 더욱 낮아집니다. 마치 적당한 신랑감의 비율이 극히 일부인 경우와 유사합니다. 노란봉투법은 어쩌면 하청노조에게는 시련의 장일 수도 있습니다. 김동호 논설위원은 지나치게 사용자 중심적인, 그리고 경제학적 분석 방법에서 극단적인 경우를 일반적인 경우로 상정하는 흠이 있습니다.

<김동호 칼럼>

지난 10일 시행된 노란봉투법의 파장은 앞선 세 정책보다 더 클 수 있다. 노동조합법을 개정한 이 제도 시행 첫날 407개 사업장에서 “진짜 사장 나오라”는 하청 노조의 투쟁이 막을 올렸다. 시장의 역습은 이미 시작됐다. 기업들은 로봇 투입과 공장 자동화를 서두르고 있다. 이에 따른 경제적 귀결은 일자리 위축이다. 이를 막기 위해 노조가 반발하겠지만, 시대적 흐름인 로봇 투입과 공장 자동화를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하청 노조의 무차별적 교섭 요구는 로봇 투입 속도를 더 재촉할 수 있다.


비정규직보호법, 최저임금, 유통산업발전법, 노란봉투법은 모두 정의로운 취지를 내세운 정책이다. 하지만 경제적 귀결은 취약계층의 일자리 기반을 흔들고 경제 생태계를 오히려 불안하게 만드는 시장의 역습으로 이어졌다. 왜 이런 정책 실패가 반복될까. 한쪽만 보기 때문이다. 정통 경제학자는 단정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다. 어떤 정책이 있으면 “한편으로는 효과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을 반드시 말한다. 오죽했으면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어디 한손잡이 경제학자 없느냐”고 했을까.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5/0003510358?sid=110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ㆍ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2. “사용자”라 함은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를 위하여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이 경우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ㆍ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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