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협약상 연차휴가 청구 기한과 사용자의 시기변경권>

by 성대진

○법률상의 제도는 현실에서의 타당성이라는 선결조건을 구비하여야 합니다. 노동법상의 제도는 전적으로 근로자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접적이나마 사용자도 보호합니다. 사용자를 보호하지 않으면 근로자의 생존터전인 사업장 자체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노동법은 노동보호라는 직접적인 보호법익 외에 사용자의 이익보호라는 간접적인 보호법익도 존재하는 공간인 셈입니다. 연차휴가제도는 기본적으로 근로자를 보호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간접적이나마 사용자도 보호합니다.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 2015.5.28. 선고 2013헌마619 결정)는 연차휴가의 취지에 대하여 ‘휴게시간이나 주휴일은 하루 또는 일주일의 노동으로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누적된 근로자들의 생리적인 회복을 위한 것이 주목적이라면, 연차유급휴가는 임금 삭감 없이 휴가기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근로자들이 노동으로부터 일정기간 해방되고 사회적⋅문화적 시민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판시했습니다. 연차휴가가 없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1분 1초가 바쁜 사업장도 존재하기 마련이며, 이 경우에는 사용자의 이익도 보호하여야 합니다.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은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간접적이나마 사용자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를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이라 합니다. 그러나 사용자가 임의적으로 시기를 변경하면 근로자의 연차휴가권은 유명무실해집니다. 그리하여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비로소 시기변경권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막대한 지장이 있는지는 개별적 사안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운영의 정시성이 중요한 사업, 가령 정기버스노선사업에서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자의 연차휴가 청구에 관한 기한을 정한 경우 그 기한을 준수하지 않은 연차청구에 대한 시기변경권 행사의 효력이 문제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 대법원 판례(대법원 2025. 7. 17. 선고 2021도11886)는 위 두 가지 사안을 쟁점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피고인(노선버스 사업주)이 운영하는 시내버스회사는 휴가일 3일 전에 휴가를 청구하도록 하는 단체협약을 두었는데, 이 사건 근로자(피해자, 버스기사)가 단체협약이 정한 휴가 청구 기한을 지나 연차휴가를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고, 피고인이 이 사건 근로자가 휴가 청구 기한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등의 사유로 연차휴가를 반려하자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안입니다. 병원이나 노선버스 등 기계적으로 인력이 투입되는 사업장에서 이렇게 연차휴가를 신청하는 경우에 사전에 기한을 두는 경우가 다수입니다. 원심은, 단체협약에서 정한 휴가 청구에 관한 기한은 유효하고, 이 사건 근로자는 기한을 지나 연차휴가를 신청하였으므로 피고인이 시기변경권을 행사한 것이 이 사건 근로자의 휴가에 관한 권리를 침해한 것이거나, 근로기준법 위반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은 ➀ 이 사건 근로자가 지정한 휴가일에 휴가를 부여하면 사용자인 피고인으로서는 대체근로자를 확보하여야 했고, ➁ 이 사건 단체협약에서 정한 휴가 청구에 관한 기한은 대체근로자 확보에 통상적으로 필요한 기간이라고 노사가 상호 합의한 기간에 해당하고, 그 기간은 사용자가 시기변경권을 적절하게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합리적인 기간으로 볼 수 있으며, ➂ 이 사건 근로자가 단체협약에서 정한 기한을 준수할 수 없었던 불가피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➃ 피고인의 시기변경권 행사를 위법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원심의 결론을 수긍하여 상고를 기각하였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의료대란이 발생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의료인력의 대체투입이 지속적으로 어려웠다는 사실 자체는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각급 병원은 고육지책으로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으로 연차휴가의 사용기한을 두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대법원 판결의 의의는 이렇게 열악한 의료현실에 따른 연차휴가의 사용기한의 적법성을 인정하고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을 인정하여 노동법이 간접적이나마 사용자를 보호한다는 것을 명확히 한 점에 있습니다.

<근로기준법>

제60조(연차 유급휴가) ① 사용자는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② 사용자는 계속하여 근로한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또는 1년간 80퍼센트 미만 출근한 근로자에게 1개월 개근 시 1일의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③ 삭제

④ 사용자는 3년 이상 계속하여 근로한 근로자에게는 제1항에 따른 휴가에 최초 1년을 초과하는 계속 근로 연수 매 2년에 대하여 1일을 가산한 유급휴가를 주어야 한다. 이 경우 가산휴가를 포함한 총 휴가 일수는 25일을 한도로 한다.

⑤ 사용자는 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휴가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주어야 하고, 그 기간에 대하여는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통상임금 또는 평균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



제110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제10조, 제22조제1항, 제26조, 제50조, 제51조의2제2항, 제52조제2항제1호, 제53조제1항ㆍ제2항, 같은 조 제4항 본문ㆍ제7항, 제54조, 제55조, 제59조제2항, 제60조제1항ㆍ제2항ㆍ제4항 및 제5항, 제64조제1항, 제69조, 제70조제1항ㆍ제2항, 제71조, 제74조제1항부터 제5항까지, 제75조, 제78조부터 제80조까지, 제82조, 제83조 및 제104조제2항을 위반한 자



<대법원 판례>

근로자의 연차유급휴가권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면 당연히 성립하고(근로기준법 제60조 제1항 내지 제4항), 다만 근로자가 시기를 지정하여 그 청구를 하면 사용자의 적법한 시기변경권의 행사를 해제조건으로 그 권리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으로(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 위반죄는 근로자가 연차유급휴가에 대하여 시기를 지정하여 그 청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적법한 시기변경권을 행사하지 아니한 채 근로자의 연차유급휴가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한다(대법원 2000. 11. 28. 선고 99도317 판결 참조).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 단서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사용자는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적법하게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수 있다. 여기서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내용과 성격, 근로자가 지정한 휴가 시기의 예상 근무인원과 업무량, 근로자의 휴가 청구 시점, 대체근로자 확보의 필요성 및 그 확보에 필요한 시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특히 노선 여객자동차운송사업과 같이 운영의 정시성이 중요한 사업에 있어서는 대체근로자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할 것이므로 근로자가 지정한 휴가 시기까지 대체근로자를 확보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어려운 상황인지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노선 여객자동차운송사업과 같이 운영의 정시성이 중요한 사업에 있어 노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자의 휴가 청구에 관한 기한을 정하고 있는 경우, 그 기한은 대체근로자 확보 등에 소요되는 합리적인 기간에 관하여 노사가 합의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로 인해 근로자가 불가피한 사유로 그 기한을 준수하지 못한 경우까지 휴가에 관한 권리가 제한된다고 해석되지 않는 이상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노선 여객자동차운송사업과 같이 운영의 정시성이 중요한 사업과 관련하여 단체협약에서 근로자의 휴가 청구에 관한 기한을 정하고 있는데도 근로자가 불가피한 사유 없이 그 기한을 준수하지 않고 휴가를 청구하는 것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사용자가 지정된 휴가 시기까지 대체근로자를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을 발생시켜 그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사용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기준법 제60조 제5항에 따라 적법하게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25. 7. 17. 선고 2021도1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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