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한미 FTA가 체결되었습니다. 진보진영에서는 불평등협정이라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여기에서는 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라는 약자가 등장하여,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 제도를 도입하였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ISDS제도를 악용하여 미국을 본거지로 둔 론스타펀드와 메이슨펀드는 바로 이 소송을 제기하였고 그들에게 한국정부는 거액을 지급하였습니다. 국가주권면제이론을 포기한 한국에게는 상당히 불리한 독소조항이 맞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협정은 두고두고 효자노릇을 했습니다. 미국에 거액의 무역흑자를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한미 FTA를 성공시킨 정부는 EU와 또다시 FTA협정을 체결하였고, 한EU FTA는 2011년 7월 1일에 정식으로 발효되었습니다. 이 협정은 대한민국과 유럽 연합 간의 자유무역협정으로, 한미 FTA와 마찬가지로 양측의 상품, 서비스, 투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역 증진을 목표로 한다고 정부는 발표를 했는데, 역시 국민에게는 생소한 용어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블루라운드라는 것입니다. ‘블루라운드’라는 것 자체는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이미 WTO체제의 출범 당시부터 존재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EU가 한국에 집요하게 이것을 요구한 이유는 주 35시간제와 4일제 근무 등 근로조건이 근로자에게 유리한 EU와 한국의 근로조건은 필연적으로 무역조건에서도 반영되기 마련이라는 논거로 EU는 ILO를 내세워서 블루라운드를 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EU의 요구를 반영하여 문재인 정부시절에 단체결성의 자유 등 1991년 ILO에 가입하면서 유보하였던 조항을 국회에서 비준하였습니다.
○바로 한EU FTA를 주도한 것이 EU영내에 있는 기업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개인사 못지않게 국가 차원의 문제도 아이러니가 존재합니다. 다음 노란봉투법에 대한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의 '노란봉투법'이 바로 그것입니다. 블루라운드를 체결하면서 ILO정신을 강조했던 EU의 주한 사업소의 모임인 ECCK가 ILO가 강조하는 노란봉투법의 정신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노란봉투법의 핵심 중의 하나인 손해배상책임의 제한에 대하여 기업의 단순한 권리 행사를 넘어 노조 탄압 수단이 되다 보니 국제노동기구 ILO도 이미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권고적 효력’을 이유로 ILO의 경고를 정면으로 무시했지만, 이 ILO를 등에 업고 한국정부를 압박하던 EU의 한국지회인 ECCK의 주장은 모순을 넘어 양두구육의 수준입니다.
○ECCK의 주장은 보수신문과 경제신문, 나아가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도 판에 박은 듯 동일합니다. 네이버의 댓글에는 당연한 듯이 진영논리가 등장했습니다. 첫째는 원청회사가 무한 단체교섭을 해야 하며, 둘째는 부진정연대채무를 규정한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의 법리체계를 무너뜨린다는 비판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타당하지 않습니다. 무한교섭의 쓰라림은 집단교섭이라는 묘수가 존재하며 오히려 하청노조들에게 불이익이 가해질 수 있습니다. 수많은 하청노조와 1천 번이 넘게 단체교섭을 강제하는 것은 상식에도 반합니다. 원청회사는 교섭방식을 집단교섭으로 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는 하청노조 간에 극한의 노노갈등도 예상됩니다. 그 이전에 EU의 사업장 중에서 다단계 하청기업이 존재하는 철강, 자동차, 선박 등 거대한 장치산업장 자체가 없기에 ECCK의 주장 자체가 공허합니다.
○그리고 이미 노조원들의 손해배상책임에 대한 정부안은 공동불법행위자 간의 연대책임은 유지하되, 이후 개인의 손해액 분담 비율을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본 대법원 판례(2023. 6. 15. 선고 2017다46274 판결)를 반영했습니다. 대법원은 위 판례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가 2010. 11. 15.부터 2010. 12. 9. 사이에 원고 현대자동차 주식회사의 울산공장 1, 2라인을 점거하여 위 공정이 278.27시간 동안 중단되자, 원고가 위 쟁의행위에 가담한 피고들을 상대로 조업이 중단됨으로써 입은 고정비용 상당의 손해배상을 일부 청구하는 사안에서, 개별 조합원 등에 대한 책임제한의 정도는 노동조합에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피고들이 비정규직지회와 동일한 책임을 부담한다는 전제에서 피고들의 책임을 50%로 제한한 것은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 현저히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원심판결 중 피고들 패소부분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이번 노란봉투법안은 바로 이 대법원 판례이론을 입법한 것입니다.
○외국기업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돈이 돼서’ 들어온 것이지 한국인의 구세주라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원청노조가 단체교섭의 어려움을 근거로 집단교섭을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으며, 이는 하청노조를 굴복시킬 수도 있는 강력한 무기임에도 만연히 ‘잠재적 범죄자’ 운운하는 것은 정당한 주장이 아닙니다. 특히 노란봉투법이 체결되면 한국을 떠날 수 있다는 경고는 전형적인 내정간섭이자 자기부정, 그리고 양두구육에 해당합니다. EU는 다단계 하청구조의 기업 자체가 없으면서 무한한 단체교섭의 위험을 핑계삼는 것은 ILO를 빙자하여 한국기업과의 경쟁을 회피한 꼼수였던 한EU FTA의 정신과도 배치됩니다. 사실 자체를 왜곡하고 오로지 ‘이재명 때리기’에 몰두한 보수야당과 보수신문, 그리고 경제신문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자 출신 김영훈 장관의 항변이 눈길을 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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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둘러싼 일부 국내 주재 유럽계 기업의 우려를 일축했다. 노란봉투법은 국내 노동 현실을 국제 기준에 맞추고 안정적 경제 성장을 하기 위한 토대라는 주장을 폈다.
김 장관은 29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연 브리핑에서 “산업 생태계 변화,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원·하청의 책임 있는 관계를 요구하고 있고, 유럽의 공급망실사법과 같이 책임 있는 경영, 거래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며 “무역이나 통상에 있어서도 오히려 국제 기준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격차 문제를 우리 경제의 저성장 근본 원인으로 지적한다”며 “(원·하청 격차 축소가 기대되는) 노조법 2·3조 개정은 ‘진짜 성장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전날 주한유럽상공회의소가 노란봉투법을 놓고 공개 제기한 우려에 대한 김 장관의 답변이다. 한국에 진출한 유럽계 기업 400여곳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이 단체는 “(노란봉투법은)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교섭 상대 노조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교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위험에 직면할 경우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labor/12105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