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드레서 윤시내의 ‘DJ에게’>

by 성대진

노래면 노래, 율동이면 율동, 그리고 가창력이면 가창력 모두 당대 최고였던 가수가 1980년 전후 대한민국 가요계를 뒤흔들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윤시내입니다. 특히 1982년은 윤시내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해입니다. 무려 10주 연속 ‘가요톱10’의 정상를 누렸던 조용필의 ‘못 찾겠다 꾀꼬리’를 누르고 정상에 올랐으며, 그해 ‘KBS가요대상’에서 여자 최우수가수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MBC에서 ‘10대가수’에도 등극했습니다. KBS는 남녀로 구분하여 최우수가수상을 수여했지만, MBC는 딱 한 명만 ‘가수왕’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이용이 가수왕으로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윤시내는 데뷔무대부터 뭔가 아방가르드하고 데카당스한 분위기로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면서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노래도 독특하고 의상도 화려한 패션을 고집하면서 여러모로 튀는 가수였습니다. 게다가 약간 허스키하면서도 분위기를 압도하는 가창력에 짙은 호소력이 묻어나는 발성과 빼어난 율동이 더해져서 특급가수의 모든 조건을 구비했습니다. 특히 다른 무대에서 같은 분위기의 옷을 절대로 입지 않는 묘한 강박관념이 있는 가수였습니다. 이미 환갑이 넘은 나이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그의 대표곡 ‘DJ에게’를 멋지게 부르면서 화려한 율동을 과시하는 다음 유튜브 영상을 보면 윤시내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어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데, 전성기인 20대에는 얼마나 대단했을지 도무지 가늠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도 의상이 화려하기에 당시 김동건 아나운서가 농반진반으로 ‘가수활동을 하면서 버는 수입의 상당액을 의상 구매로 쓰지 않나요?’라고 짓궂은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윤시내는 ‘가수는 팬에게 언제나 멋진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예의입니다.’라는 답변을 하여 고개를 끄덕이게 했습니다. 여가수는 노래뿐만이 아니라 멋진 의상과 율동으로 무장하는 것이 팬들에 대한 예의라는 윤시내의 답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는 존재이기에, 의상, 행동, 연예활동 모두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지적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한편, 윤시내의 화려한 패션은 주로 치마로 이루어졌기에, 바지패션으로 일관했던 이선희와 묘한 대조가 되었습니다.


대중가요가 유행가라고도 불리는 이유는 당연히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음악감상실이나 음악다방이 존재했기에, ‘DJ에게’나 ‘고독한 DJ’와 같이 DJ가 대중가요의 제목으로 쓰이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실제로도 7080시대에는 청소년의 희망직업군의 상단에 DJ가 꼽히기도 했습니다. 유튜버나 빌딩주가 상단에 있는 요즘과 많이 비교가 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리듬입니다. ‘DJ에게’의 박자 자체는 4박자의 디스코 박자입니다. 그러나 리듬은 트로트가 묻어있습니다. 이를 ‘뽕끼’라 하는데, 1980년대 중후반까지 대중가요의 보편적 양상이었습니다. BTS의 대표곡 ‘Fake Love’도 디스코 박자인데, 뽕끼가 전혀 없는 것과 크게 대조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1uPvHo2Hpw&list=RDp1uPvHo2Hpw&start_radio=1

가창력, 율동, 패션센스까지 최정상급이었던 윤시내도 1990년대에 이르러 확확 바뀌는 가요계의 문법과는 차츰 멀어졌습니다. 이때부터 발라드 광풍, 랩, 댄스음악, 그리고 아이돌 태풍이 몰아치면서 아무래도 중견가수 이미지의 윤시내가 버티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실은 천하의 조용필의 위상도 조금씩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중년의 윤시내가 10대를 환호하게 만드는 댄스곡으로 인기몰이를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습니다. 조용히 윤시내는 기억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실은 그것이 대중가수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단지 올드팬들의 가슴에 진하게 남기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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