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항기의 이 노래 : ‘나는 행복합니다’>

by 성대진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정근우가 한화 이글스팬에 대한 소감에 대하여 딱 한마디로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행복야구! 이기는 경기보다 지는 경기가 많아서 그야말로 지기를 밥 먹듯이 했던 한화 이글스였지만, 팬들의 열성 하나는 끝내줬다는 것이 행복야구의 중심 정근우의 소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행복야구라는 이름의 유래인 ‘나는 행복합니다’를 불렀던 왕년의 톱가수 윤항기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는 것이 이채로웠습니다. 물론 정근우가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한 노래이고, 윤항기 자체가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가수활동을 하지 않았던 이유도 한몫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Zd1mhlHRA

윤항기는 여동생 윤복희와 더불어 1970년대에는 TV나 라디오를 켜기만 하면 나오는 단골출연자였습니다. 특히 주말 버라이어티쇼에서 두 남매는 초대손님으로 끊이지 않고 출연을 했습니다. 지금도 여름이면 들리는 ‘해변으로 가요’를 불렀던 1960년대 한국을 대표했던 록그룹 ‘키보이스’의 리드보컬이 바로 윤항기입니다. 여동생 윤복희와 함께 어려서 눈물겨운 가난과 싸웠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국민가수로 등극했던 인물이 바로 윤항기입니다. 그 인기에 힘입어 ‘10대 가수’에 등극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장미빛 스카프’를 부르면서 울컥하는 격한 감정을 불러오는 독특한 창법은 아직도 노래방에서 진행형입니다.


‘장미빛 스카프’를 흐느끼는 듯 감정을 실어 부르다가 자신의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을 저어했는지, 특이하게도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노래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 노래가 먼 훗날 한화 이글스를 상징하는 노래가 될 것이라고는 본인도 몰랐을 것입니다. 당시 명 MC 고 박상규가 어느 쇼무대에서 왜 그렇게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미 8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가난한 시절과 비교하면 너무나 행복하다.’ 라는 요지로 대답을 한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노래 하나로 남매가 정상급 가수로 등극했으니 행복하지 않은 것이 이상합니다. 그래서 그는 방송에서 언제나 웃는 상으로 출연했습니다.


행복! 누구나 행복을 갈구합니다. 헌법에는 무려 행복추구권이라는 기본권이 있습니다. 법리적으로 행복추구권을 권리로서의 속성이 약합니다. 행복이란 인간이 느끼는 추상적인 감정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권리로 고양하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금전채권의 경우에는 금전을 지급하라는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상대방에 대하여 행복을 보장하라는 내용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률가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행복이란 권리라기 보다는 이상을 향해 몸짓을 하는 인간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권리라는 성격이 약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비극을 가슴에 안고서도 우리는 웃기는 일에는 웃음을 열고 행복이라는 고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월급이 올라가길 기원하고 연인, 가족과의 행복을 또 기원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을 했나 봅니다. 그리고 한화 이글스팬들은 신구장에서 다시 윤향기를 소환하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이글스라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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