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문화동 천근오거리 변천사>

by 성대진



내 고향이 대전 문화동의 천근이라 그런지 어려서부터 천근의 변천사를 누구보다 소상히 알고 있다. 어렸을 적의 천근은 참으로 묘한 곳이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분명히 충청남도의 수도격인 도청소재지이며 전국의 6대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진 주요도시의 일부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과수원, 논과 밭이 널려 있었고, 커다란 방죽이 있었으며, 많지도 않은 초가집과 기와집도 논과 밭 사이에 드문드문 있었기에 도무지 도시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치 80년대초 서울의 구파발처럼 시골 읍, 게다가 변두리 정도라는 인상이 강했다.


실제로도 어려서부터 알게 된 친구와는 지금의 문화체육관 근처 논두렁에서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구워먹거나, 메뚜기를 강아지풀에 꿰어 연탄불에 구워먹기도 했다. 아마도 천근 토박이들은 그런 추억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의 천근 오거리의 주위는 모두 논과 밭이었는데, 하나씩 둘씩 일명 ‘슬라브 집’이라 불리는 집들이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논과 밭은 점점 사라져갔다


천근오거리로 들어오는 도로는 비포장 도로였는데, 간혹 다니는 차량이 있으면 뽀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예전에는 13번, 15번 버스가 있었는데, 모두 산성동쪽으로만 갔다. 인구가 그 쪽이 많아서인지 어머님의 손을 잡고 대전역전시장에 다녀오려면 꼭 13번과 15번을 탔던 기억이 있다. 나는 어려서 버스기사가 되고 싶었다. 그 큰 버스를 움직이는 버스가 엄청나게 대단해 보였으며, ‘오라이’하고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안내양을 부리는 버스기사가 엄청난 ‘끗발’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였다. 어린 마음에서인지 어머님이 시장을 가자면, 버스를 타는 재미에 놀다가도 쏜살같이 뛰어왔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서문교회 앞 ‘태광상회’라는 상점앞에 내려서 시장에서 산 물건들을 낑낑거리며 들 때면 마음이 흐뭇했다. 시장에서 장을 볼 때, 어머님을 졸라서 과자나 붕어빵 등 맛난 것을 꼭 하나 정도는 사서 종이봉투에 담아서 어머님의 장바구니에 담았기 때문이다(그나저나 풀을 발라서 붙였던 종이봉투를 안 본지도 오래 됐다). 어머님이 좋았고, 버스를 타는 것이 좋았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좋아서 장을 보는 것은 엄청난 즐거움이었다. 그래서인지 어쩌다가 누님이 가게 되면, 떼를 쓰고 울곤 했다.


그러다가 13번 버스가 문화동 천근오거리로 오게 되었다. 텅빈 천근오거리 주위가 어느새 빼곡하게 집이 가득 찼기 때문인지, 천근오거리쪽으로 버스노선이 변경된 것이다. 예전에는 두 개의 노선이 있었으니 하나는 산성동쪽이요, 다른 하나는 방죽쪽이었는데, 방죽쪽으로 가는 것이 더 많았다. 그러나 천근오거리에 사람이 많아져서인지 천근오거리쪽으로 가는 버스가 방죽쪽으로 가는 버스보다 슬며시 늘어났다.


예전에 천근오거리 쪽에서 방죽쪽으로 가다보면, ‘후지칼라 중부현상소’라는 필름 현상소가 있었는데, 바로 그 집이 절친한 친구의 집이었고, 그 앞으로 천근노선의 13번스의 종점이었다. 그 친구의 집은 현상소사무실의 별채에 있었다. 그 친구는 13번 버스가 집 앞이라, 동양백화점에 가려면 버스를 타기가 쉽다고 자랑을 하곤 했다. 어린 마음에 사소한 것도 자랑거리가 되는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상급학년이 될 때까지도 천근오거리는 비포장의 모습 그대로였는데, 나는 친구들과 천근오거리에서 때로는 아랫녘 놀이터에서 무수히 구슬치기와 딱지치기를 하곤 하였다. 비가 오면, 천근오거리가 흥건히 젖는 정도를 넘어 윗동네에서 온갖 잡동사니가 떠내려가곤 하였다. 누런 황토가 섞인 빗물이라도 나는 물장난이 좋아서 천근오거리에서 조악한 슬리퍼를 신고 뛰어놀았다. 뼈대가 남듯 도로에 박힌 돌덩이가 재미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비로소 천근오거리는 시멘트 옷을 입었다. 조잡한 포장이라 군데군데 패이고 흉터가 졌어도 뽀얀 먼지가 사라졌다. 그리고 집과 사람들은 점점 늘었다. 그리고 다시 아스팔트로 천근오거리의 도로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점점 천근오거리에서 멀어져 갔다. 일부 친구들도 하나씩 둘씩 안 보이기 시작하였다. 대전에 자주 가더라도 천근오거리로 갈 일이 그다지 없어졌다. 그러나 어려서 같이 뛰어 놀던 친구들이 그렇게 많이 천근오거리를 떠나갔어도 오히려 사람들은 더욱 늘어서 이제는 시장까지 생겼다. 그 한산했던 도로에 차들이 넘쳐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천근오거리를 둘러보면, 언제나 친구, 선후배, 동네 아저씨, 아줌마 등 아는 사람 일색이었는데, 이제는 아무리 둘러 봐도 아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내가 아는 천근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세월이 그렇게 흐른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간직한 천근오거리의 추억은 아직도 또렷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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