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 핀토스를 아시나요?>

by 성대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을 타고 대전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금강변 신탄진에 주상복합아파트가 높이 솟아있는 것을 만나게 됩니다. 이 아파트가 금강엑슬루타워아파트입니다. 대전시민은 바로 이 아파트를 두고 대전의 ‘이정표’ 내지 ‘길라잡이’로 부르기도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의도로 지은 것은 아니지만, 짓고 나니까 졸지에 대전의 관문 또는 랜드마크로 등극(?)했습니다. 바로 이 아파트부지가 지금은 사라진 풍한방직이라는 유명한 회사의 부지였습니다. 또한 대전의 상징이기도 한 서대전역네거리에서 유성방향으로 가다보면 입지가 출중한 오류동의 삼성아파트가 커다란 단지를 이루고 있는데, 바로 이 오류동 부지도 풍한방직의 공장부지였습니다.


오류동에서 대로를 건너면 바로 제 출생지인 문화동입니다. 좋든 싫든 풍한방직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 자랐습니다. 그 풍한방직이 만든 청바지 브랜드가 핀토스였고, 현재 오뚜기라면의 원조가 풍한방직의 계열사인 청보라면이었습니다. 청보라면이라면 아무래도 올드보이만 기억을 소환합니다. 요즘 간판상품인 진라면으로 유명한 오뚜기라면의 원조가 바로 청보라면이었습니다. 청보는 가수 김수철이 cf에서 활약했던 ‘곱배기라면’이 간판이었는데, 아무래도 맛이 떨어지니까 양으로 승부한다는 인상이 뚜렷했던 기억이 납니다.

바로 이 풍한방직이 자사의 청바지 브랜드를 내세워 창립한 프로야구단이 청보 핀토스입니다. 프로야구단을 신설한 것은 아니고 꼴찌야구단이라는 서글픈 역사를 지닌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해서 출발했습니다. 사라진 인천 소재 프로야구팀의 역사로 요즘 신조어로 ‘삼청태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그 삼청태현의 ‘청’에 해당하는 팀이 청보 핀토스입니다. 참고로, 삼은 삼미 슈퍼스타즈, 태는 태평양 돌핀스, 현은 현대 유니콘스를 의미합니다. 풍한방직 자체가 대전 연고이기에 청보 핀토스는 대전 프로야구단이 되는 것이 마땅했으나, 개인사는 물론 기업사도 의도한 대로만 흐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청보 핀토스를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정확히는 그 이전의 삼미 슈퍼스타즈부터 응원하기 시작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nnLMoU4Htc

삼미 슈퍼스타즈는 한국 프로야구(KBO) 역사상 아직도 깨지지 않은 불명예기록인 2할이 되지 않는 최저승률과 특정 팀(OB 베어스) 상대 전패(16전 전패)의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1982년 KBO의 출범 이후 OB 베어스는 1986년까지 대전 연고팀이었기에, 저는 OB 베어스를 응원했습니다. 실은 연고지 팀을 응원하지 않으면 당시에는 역적 비스므레하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OB 베어스가 거듭하여 삼미 슈퍼스타즈를 이기자 처음에는 동정심으로, 그러다가 나중에는 진성으로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했습니다. 졸지에 두 팀을 응원한 셈입니다. 아무튼 인천과는 그때는 물론 지금도 아무런 연고가 없음에도 열렬히 응원했습니다. 단지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1982년 전패라는 기록은 지금도 인터넷에 널리 퍼져있는 기록입니다만, 그 다음 해 맨 첫경기에서 삼미 슈퍼스타즈가 대전에서 OB 베어스를 이긴 기록은 널리 퍼져있지 않습니다. 바로 그 경기를 제가 직관했습니다. 어찌나 기분이 좋았던지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무튼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하던 기세는 청보 핀토스라는 사실상의 대전 연고팀에게도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약체 팀의 DNA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청보 핀토스는 지고 또 졌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야구해설을 하던 현 KBO 총재 허구연이 감독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러나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기에 미국식 야구운영을 하겠노라는 허구연의 의지는 야구장에서는 공허했습니다. 또다시 패배의 연속이었습니다. 지금은 편하게 말하지만, 당시 거의 울먹울먹하던 허구연의 인터뷰가 생각납니다.


청보 핀토스는 구단의 상징이 얼룩말이기에, 투수가 마차를 타고 입장했던 독특한 세레모니를 하여 관객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모기업 자체가 부도를 맞았고 성적도 꼴찌를 전전했기에 인기는 차가웠습니다. 관중이 텅빈 야구장에서 쓸쓸한 경기를 하다가 나중에는 태평양으로 인수되었고, 팬들의 기억에서 빛의 속도로 잊혀졌고 단지 추억에서만 존재합니다. 내기 바둑이나 내기 장기를 둬도 지면 기분이 꿀꿀한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당시 패배의 쓴맛을 보던 선수들이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그 시절 선수단에게 위로를 보냅니다. 아울러 청보 핀토스를 응원했던 팬들에게도 위로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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