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무협영화 ‘소권괴초’>

by 성대진

중국 방송계가 한국의 연예물을 무단으로 베낀다는 것은 이제 국민상식 수준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중국 방송계의 무단표절을 담은 뉴스나 각종 커뮤니티의 게시글에는 중국과 중국인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은 성토가 엄청납니다. 그런데 네티즌의 비난과 성토는 별론으로 하고, 왜 중국인들이 한국 연예물을 표절하는가, 그 원인에 대한 글은 거의 없습니다. 부끄러운 과거지만 한국 방송계에서 1990년대까지 일본 연예물을 넘어 대중문화 전반을 베낀 것이 엄연한 사실을 고려하면, 한, 중, 일 3국의 표절의 역사와 그 원인에 대한 점검은 필요합니다.


한국이 일본을, 그리고 중국이 한국을 서로 베낀 것은 한, 중, 일 3국이 정서적, 문화적, 그리고 인종적 동질성 내지 유사성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한, 중, 일 3국에서 ‘삼국지’는 천년이 넘게 스테디셀러였지만, 서양 제국에서는 스테디셀러는 고사하고 이름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연상하면 그 이해가 쉽습니다. 이천년이 넘게 공자의 논어 등 사서 삼경이 면학의 교재였다는 점 등 한자문화권이라는 점, 그리고 인종적으로도 근접하다는 점 등을 아울러 고려하면 한, 중, 일 3국이 정서적으로 동질적인 영역을 형성한다는 점 자체는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히트한 연예물은 한국에서도 히트할 가능성이 높고,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히트한 연예물은 일단 한국에서 히트라는 검증을 거친 것이기에, 중국 방송계가 표절을 했던 것입니다. 표절이란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고 컨텐츠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무협물이 한국 영화에서 꾸준히 사랑을 받은 이유는 한국인이 ‘삼국지’, ‘수호지’ 등 중국 무협물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사랑에 기인합니다. 한마디로 중국 무협물 자체가 익숙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서양의 기사와 결투를 담은 영화라면 단지 일회적 흥미 정도에 그칠 것이지만, 중국 무협물은 익숙하기에 대박까지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에서 이소룡이 단지 이국적인 흥미 정도에 머물지만, 한국에서는 신드롬을 일으키고 아직까지 올드팬들의 향수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 이소룡의 향수를 채워줬던 인물이 바로 성룡입니다. 이소룡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냐 하면, 사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편집 필름으로 조잡하게 만든 ‘사망유희’가 국내에서 대박을 쳤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그 시절만 하더라도 중국 무협영화는 한국에서 소구력이 강력했습니다.


성룡은 이소룡 사후 무협물에 대한 갈증이 폭발할 무렵에 ‘취권’으로 혜성같이 등장해서 무협애호가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이후 성룡이 주연한 유사한 무협영화물은 내놓는 족족 메가히트를 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과거 명절만 되면 안방극장으로 찾아오는 손님으로 성룡이 꼽히곤 했습니다. ‘취권’ 이후 국내에 연타석 홈런을 친 영화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소권괴초’입니다. 악역전문 임세관(Yen Shi Kwan)과 희로애락이라는 감정의 변화추이에 따라 권법이 달라진다는 발상으로 결투하는 장면이 아이코닉한 장면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임세관은 황정리와 함께 한국인 배우라고 국내에서 잘못 알려지기도 했는데, 영문판 imdb는 물론 구글 및 야후에서도 공히 중국인 배우라고 소개를 하는 점으로 보아 중국인이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인이라면 한국 언론에서 한국에서의 활동을 소개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V7zxzbMTT4

그나저나 위 ‘소권괴초’를 새롭게 본 분이라면 배경이 무척이나 조악하고 카메라워킹도 조잡한 영화, 즉 전형적인 B급영화인 점을 단박에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엉성한 영화, 게다가 지루할 정도로 허접한 쿵푸가 반복되는 영화가 대박을 쳤는지 아리송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동양인의 정서적 동질성과 문화적 배경, 그리고 이소룡에 대한 향수 등이 어우러진 이유라는 점은 전술하였습니다. 그러나 ‘취권’부터 ‘소권괴초’에까지 이어진 쿵푸 동작은 뭔가 번거롭고 부자연스럽습니다. 동작을 맞추지 않고는, 나쁘게 말하면 짜고 치는, 저렇게 동작이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악당에게 원수를 갚으려면 무수히 많은 ‘노가다’를 해야 하기에 서양인의 시각에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홍콩무협영화는 헐리우드에서 차츰 외면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국내관객도 외면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잡한 무예동작과 조잡한 음향은 처음에는 신기할 수는 있지만, 나중에는 짜증나고 지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윤발로 대표되는 ‘느와르 영화’로 무협영화를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윤발 류의 영화도 나중에는 ‘그 밥에 그 반찬’ 수준으로 영화적 발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완전히 밀렸고, 완전히 잊혀진 유물 정도로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성룡은 헐리우드에 진출하여 생명을 연장했지만, ‘소권괴초’ 류의 영화는 영영 출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런 류의 무협영화 자체가 제작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소권괴초’는 올드보이들의 추억에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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