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장관은 강도인가, 장관인가?>

by 성대진

○다음 <기사>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11일(현지시간) 현재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관세 및 무역협정과 관련, 미국과 큰 틀에서 합의한 대로 수용하거나 관세를 인하 합의 이전 수준으로 내야 한다고 압박했다.’라고 시작합니다. 만약에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일개 장관이 한국을 상대로 이렇게 겁박을 했다면 아마도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장관은 미국의 장관이기에 이렇게 오만방자한 겁박을 해도 국내 언론은 물론 주요 정당에서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힘은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오만방자함은 잊어도 됩니다. 발언의 내용이 중요합니다.

○러트닉 장관은 한미 관세 및 무역협정(이하 ‘협정’)을 수용하거나 25%의 상호관세를 수용하라, 즉 양자택일을 하라고 겁박합니다. 그러면서 슬며시 일본은 이미 협정에 서명한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을 동등한 선진국으로 보되 사이즈만 차이나는 나라로 인식하는 전제이기에, 그 와중에 기분이 좋기는 합니다. 그럼, 일본이 서명했다는 그 계약의 내용을 봅니다.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트럼프의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소견이 담겨 있습니다. ‘the Government of Japan has agreed to invest $550 billion in the United States.’라는 말 이전에 ‘unlike any other agreement in American history’라는 표현은 일본이 호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의 자존심을 뭉개는 이런 표현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쓴다는 것이 불쾌합니다. 겉으로는 ‘통 큰 투자’라는 의미일 것이지만, 불평등조약이기에 통 큰 투자라는 표현은 부적절합니다.


Critically, unlike any other agreement in American history, the Government of Japan has agreed to invest $550 billion in the United States. These investments — which will be selected by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 will generate hundreds of thousands of United States jobs, expand domestic manufacturing, and secure American prosperity for generations.


○5,500달러를 일본이 미국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러트닉 상무장관은 ‘U.S. will split profits with Tokyo from Japan-funded projects until $550 billion is recouped.’라고 부연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모든 투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5,500달러에 이를 때까지 투자이익을 나눈다는 약정은 무의미합니다. 더 큰 문제는 5,500달러를 사용할 투자는 장기간에 걸쳐서 진행하는 투자이기에 이익도 먼 훗날에 발생한다는 의미입니다. 투자도 미국 정부가, 즉 트럼프가 정하고(These investments — which will be selected by the United States Government), 미국인을 고용하며(will generate hundreds of thousands of United States jobs), 수대에 걸쳐서 미국 내의 생산의 증가와 미국인의 번영을 도모하는(expand domestic manufacturing, and secure American prosperity for generations) 합의라는 것이 트럼프의 설명입니다. 요약하면, 미국만을 위한 협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투자금은 어디에 입금할까? 미국이 투자용처를 정하면, 그 투자를 수행할 특수목적법인(SPV)를 설립하고, 이 SPV계좌에 일본이 총 5,500억달러에 이를 때까지 투자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단 1달러도 투자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단 투자한 일본의 돈은 반환이 불가합니다. 이를 ‘래칫(Ratchet) 조항’이라 하는데, 보통 한국인들은 고스톱의 ‘낙장불입 조항’으로 말하면 쉽게 이해합니다. 러트닉은 인터뷰에서 미국의 혈세는 한푼도 투자하지 않겠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일본의 혈세는 마구 퍼줘도 되나,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협정은 MOU형태입니다. 일본이 투자를 소홀히 하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관세를 올리겠다는 흉계가 숨어 있습니다. 트럼프다운 발상입니다. 이제 요약하면, 미국은 한푼도 안 내고, 자국민을 교육도 하고 고용도 하고, 투자이익을 취득하며, 약정한 5,500달러에 이를 때까지 투자금을 움켜쥐고 나중에 투자가 무산되면 그 돈을 꿀꺽할 수 있습니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을 넘어 그냥 강도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협정이 중요한 것이 그 협정의 내용이 그대로 한국에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러트닉은 금액만이 다를 뿐 일본과 한국의 협정 자체는 대동소이함을 밝혔으며, 알래스카 개발과 같이 일본과 한국이 공동으로 투자할 수 있음도 밝혔기에, 일본과의 협정은 바로 한국과의 협정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관세를 무기로 주권 국가, 게다가 동맹국에 대하여 굴욕적으로 협정을 강요하는 것이 강도의 재산강탈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미국의 주류는 이제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보수세력입니다. 신자유주의의 기조는 ‘규제는 부작용을 낳으며 새로운 질서를 창출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브릭스 등 새로운 질서의 태동이 임박한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깡패짓을 하면 미국 이외의 나라들끼리 무역질서를 만들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기사>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11일(현지시간) 현재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관세 및 무역협정과 관련, 미국과 큰 틀에서 합의한 대로 수용하거나 관세를 인하 합의 이전 수준으로 내야 한다고 압박했다. 러트닉 장관은 이날 미 CNBC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워싱턴에) 왔을 때 서명하지 않았다. 그가 백악관에 와서 우리가 무역에 관해 논의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을 텐데 그건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트닉 장관은 "나는 그들이 지금 일본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연함은 없다"며 "일본은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은 그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 명확하다. 관세를 내거나 협정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7월 30일 큰 틀에서 합의했지만, 한국의 대미 투자 기금 등 세부적인 부분에서 이견을 보이는 한미 무역 합의에 대해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받아들이라는 압박으로 풀이된다. 수용하지 않을 경우 한국에 대한 국가별 관세(이른바 상호관세)는 한미간 무역 합의에 따라 인하된 현재의 15%가 아닌, 당초 책정한 25%로 올라갈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한미 무역협정 최종 타결을 위한 협상은 한국의 대미 3천500억 달러(약 486조원) 투자 패키지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방식으로 투자를 결정할지, 투자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놓고 이견이 커 난항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5621598?sid=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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