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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벽

반항심으로 삶을 살자

by 연우

운명이란 무엇일까. 운명이란 거대한 벽이 인생 전반의 삶에 걸쳐있는 것 같다. 때로는 삶이란 운에 기대어 사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이 운이라는 그 한 글자에 얹혀서 한 사람의 운명을 거대하게 작용하는 어떠한 중력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주인공일 뿐 그 극을 써 내려가는 전지전능한 작가는 아니다라는 뜻도 된다. 주인공은 그저 주인공일 뿐, 작가가 써 내려가는 고난과 고통과 정해진 운명의 결정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생각 안에서 툭하고 튀어나올 때가 있다.


삶이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여겨지지만 이 또한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불가항력, 필수불가결에 의해 꾸려진 거대한 이야기 속에 '나'라는 등장인물이 결정하고, 선택하고, 걸어가야 하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은 설계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운이 좋았다, 운이 나빴다 하는 표현처럼 삶에서 운이라는 것은 꽤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일으켜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람은 선택을 할 뿐 결과를 주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택하고 그것이 결과로 도출되기까지 운이라는 것이 움직이고 방향을 올바르게 나아갈 수도, 비틀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너무 쉽게 무너지지도 않게 가끔 좋은 일들을 선물하기도 한다. 포기하지 않을 힘도 준다. 조였던 숨통을 풀어주기도 한다.


거대한 운명이란 이 세계관 안에서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필수불가결한 벽을 느낄 때면 왜인지 반항심만 올라오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나'의 삶에서 '나'의 삶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여겨지면 억울함이 올라오기도 한다. 삶에서 오는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과 좌절은 결국 온전히 내가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인데 말이다. 그럴 때면 모나고 삐죽한 마음이 목울대를 건드리고 만다. 그리고 다짐한다. 설계해 놓은 이 벽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은 잘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도망도 치고, 울어도 보면서 포기하지는 않는 것. 포기하지 않고 다시 꿋꿋하게 살아갈 용기를 내고 조금은 무심한 태도로 흘려보낼 줄 아는 것. 그것이 유일한 삶에 대한 저항의 날갯짓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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