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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생각하는 날이 있다.

by 연우

나는 엄마를 생각하는 날이 있다. 가끔씩 엄마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날이 있다.

어렸을 때 엄마는 어떤 꿈을 꾸고, 무엇을 좋아하며 어떤 옷을 입었었는지, 어떤 것에 열광하고 좌절했는지, 또 어떤 것들이 엄마를 빛나게 하고 있었는지 생각하는 날이 있다. 어렸고 젊었고 청춘이었던 그 시절을 말이다. 내가 아는 것은 엄마는 청춘의 한 곳에서 나를 낳고 훌쩍 어른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나는 엄마가 나를 낳았던 나이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나라는 존재가 엄마를 일찍 철들게 하고 어른이 되어버리게끔 한 것이 아닌지 말이다. 철없어도 되는 나이에 나로 인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날들을 말이다.


어렸던 내가 바라본 엄마는 엄하셨고, 표현이 서툴지만 행동으로 사랑을 말하셨고, 때론 무심하기도 했으며 매일 아침밥을 차려주실 만큼 따뜻했다. 엄마의 그림자를 따라 걸어온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엄마의 모습은 다르게 느껴졌다. 엄마는 노는 것을 좋아하는 청춘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옷을 좋아하고 놀러 가는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장구를 치시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여행을 가고, 분위기 좋은 브런치 카페를 좋아한다. 젊었을 적 엄마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아주 오래된 카메라 필름 속에 신난 얼굴로 세련된 옷을 입고 친구들과 웃고 있었다. 사진 속의 엄마와 지금의 엄마는 세월의 흔적만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청춘의 한 자락에 서 있는 사람 같았다.


열정과 패기가 넘쳤던, 아름다웠고 찬란했던 그 시절에 엄마는 청춘이 만개한 어느 한 지점에서 엄마가 되었다. 어렸고, 예뻤으며 서러운 날들을 자식들을 위해 살아갔다. 어른이라 말하기엔 조금은 애매한 그런 나이에 엄마는 어쩌면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처음 겪는 모든 이상한 일들에 적응하고, 자신을 희생하고 인내하며 자신의 이름이 바래지는 그 서러움의 눈물을 꾹꾹 눌러 마음에 차곡히 쌓아 여린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가 되어버렸다.


엄마가 되어서도 서글픈 날들이 때때로 찾아와 괴롭혔을 것이다. 엄마에게 집이 무겁게 가라앉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이 일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들 사이로 숨이 막힐 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루하루 무너져 내리는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날이 있었을 것이다. 엄마도 포근한 엄마의 품에 얼굴을 묻고 엄마에게서 느껴지는 그 따스함과 다정함을 느끼며 아주 오래오래 울고 싶은 날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얼굴에 쓸쓸함이 묻어나 있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얼굴에 새겨지는 주름은 엄마가 삼켜야 했던 수많은 눈물자국 일지도.


나는 엄마가 엄마가 되기 전 순수하고 어렸던 그 시절의 엄마가 여전히 엄마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라 말하는 것처럼. 엄마의 마음이 청춘이기를 바란다. 엄마의 삶에 자신 본연의 이름을 가진 어여쁜 사람이 만개한 채 엄마를 지켜주기를 바란다. 꽃이 진다고 꽃이 다시 피지 않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꽃은 언제든 다시 돌아와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것처럼 엄마의 인생이 흘러가도 그 인생에 꽃이 언제나 활짝 피었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피기를 바란다.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행복할 용기가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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