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참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의 인연은 어느새 시간이 꽤 흘렀다. 처음 만났을 땐, 우리가 이만큼 깊어질 줄은 서로 몰랐다. 서로가 쉽게 친해지지 않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성격이었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이렇게까지 서로의 삶에 스며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친구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그 친구는 처음으로 ‘마음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있었지만, 늘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다.
마음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엔 어딘가 막혀 있었고,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 채 살아왔다. 내 이야기를 꺼내는 법도 몰랐고, 애초에 내 안에 꺼낼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냈다.
그 친구를 만나고 나서, 내 안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감정을 존중하는 법이었다. 그 친구의 말과 태도, 눈빛, 표현 하나하나에서 나는 감정을 배웠다. 미지의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감정들이, 그 친구 앞에서 하나씩 이름을 갖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처음 겪어보는 감정은 낯설고 불편했다. 감정이 살아나는 동시에, 나는 모나게 굴었고, 때로는 상처 주는 말과 행동으로 친구를 아프게 했다. 그럼에도 친구는 그런 나를 기다려줬다. 넘어갈 수 있는 건 넘어가주고, 나를 끊어내지 않았다. 그 따뜻함에 나는 지금도 감사한다.
그 친구를 만난 건 내 인생의 행운이다. 처음으로 ‘나’라는 존재를 인식했고, 처음으로 진심으로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됐다. 그 감정은 아마도 평생에 단 한 번일지 모른다. 그 친구와의 대화는 늘 짧게만 느껴진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쉽고, 하루가 모자라다. 그 친구의 기쁨은 나의 기쁨이 되었고, 그 친구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닮아갔다.
그 친구는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아채는 사람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조용히 읽어주고 위로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다. 겉으로 보기엔 차갑고 날카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여리고 따뜻한 사랑이 흐르고 있다. 그 친구 덕분에 나는 조금 나은 사람이 되었다. 사랑을 말하지 않아도,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비언어적인 방식으로도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통해, 진심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 인연이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바란다.
이 친구와의 인연이 내 생애 마지막까지 머무를 수 있기를.
그 친구는, 내게 참으로 애틋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