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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Sep 20. 2022

나는 과연 '좋은 상사' 였을까?

좋은 상사의 조건


내 눈에 업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진짜 아니야. 일머리가 너무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퇴근해서 아내에게 던진 말이었다.


"사람의 쓸모는 다 다르다고 하잖아요. 쓸모 있는 곳이 따로 있을 거예요. 조금 더 기다려 주는 게 어때요?"

아내가 내게 준 오래전 현답이었다.


내가 직장에서 한참 일에 빠져있던 30년이 다돼가는 시절의 대화이다. 난 그렇게 회사 일을 자잘한 것까지 아내에게 이야기했고, 그때마다 아내는 내게 현답을 대답에 담아서 주곤 했다.


그런 조언자의 현답이 있었지만 내가 조언자의 말을 다 따른 것은 아니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 다시 돌아보고서야 그 말이 맞았구나 하는 생각을 가끔 만나곤 한다.



당면한 목표 방향에 맞혀 일 좀 못하고 성과 좀 못 내더라도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목표가 바뀌면 지금 일 못한다는 그가 더 유능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그런 생각을 부하인 사람에게 전해 주는 상사인 사람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하인 사람들에게 좀 더 큰 관대와 좀 더 따뜻한 미소를 주는, 회사나 일을 가장 앞장 세웠던 마음의 크기를 조금은 줄일 줄 아는, 그런 상사인 사람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놈의 일하는 능력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성과가 좀 못 미치는 것이 뭐 그리 큰일이라고, 그렇게 그것에 집착하던 상사인 사람을 지금의 눈으로 보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입장을 바꾸어, 내게 지금도 기억 속에 살아있는 좋은 상사는 어떤 사람인가?


일을 잘했던 상사가 아니라, 마주할 때 따뜻함을 느끼게 했던 상사가 더 생각난다.


매사에 공정하려 했던 상사보다는, 언제나 내 편일 것 같았던 상사가 더 기억된다.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그것을  말하기 어려웠던 상사보다는, 솔직히 말해도 될 것 같았던 상사가 더 진한 잔상을 남기고 있다.


결국 따뜻했던 상사, 인간적인 정이 통했던 상사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 좋은 상사로 기억되는 것 같다.


시간이 많은 것을 바꾼다.

시간은 좋은 상사의 기준까지도 바꾼다.

그때 그렇게 대단했던 가치들이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유능한 상사라는 허명을 허명으로 대할 것 같다.

그 대신,

'따뜻한 상사인 사람'이 되려 할 것 같다.


물론 다시 한다 해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도 말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그때 나는 어떤 상사였을까?

부하인 사람들은 상사인 사람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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