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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Nov 17. 2022

난 향수가 싫다

향수가 알려 준 그때는 놓쳤던 것




난 향수를 피한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지하철을 탄다. 오늘 아침에도 여느 날과 같이 지하철을 탔다. 앉을자리가 없어 서서 있는데 근처 어디선가 향수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해왔다. 나는 잠시 참고 있다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떤 때는 앉아 있는 데 옆자리의 바뀐 주인이 향수 냄새를 강하게 동반한 채 앉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난 꾹 참고 앉아 자리를 지킬 것인지, 일어서서 코가 편한 곳으로 옮겨 갈 것인지를 갈등한다. 오늘은 그런 고민까지는 없으니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향수는 개인의 취향이다. 그러니 좋아하는 향기를 갖고 싶어서 향수를 사용하는 것이야 당연히 나도 이해한다. 다만 그 향기가 너무 강한 경우는 다르다.


나의 경우, 강한 향수 냄새를 맡으면 불편한 신체적 반응이 바로 뒤따른다. 처음엔 재채기가 나오고 그 후 콧물이 나오다가 나중엔 머리가 아파 온다. 그러니 내가 향수를 좋아할 리가 없다. 특히나 강한 향기를 풍기는 향수는 내겐 고통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나는 아침 지하철에서와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예전의 내가 떠오르곤 한다. 오래전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였다. 당시 나는 근무하던 사무실에서 소위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던 때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컴퓨터에 다운로드해놓고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그 음악을 스피커를 통해 크게 들리도록 틀어 놓았다. 내 나름은 좋은 음악을 다른 직원들도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아무도 그 음악이 싫다거나 시끄럽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난 모든 직원들이 그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런 상황은 한 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꽤 세월이 흐르고 난 후 우연히 그때 즐겨 들으며 스피커로까지 틀었던 그 음악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들은 그 음악이 취향이 바뀐 것인지 별로로 느껴졌다. 그때는 왜 그리 이 음악이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 취향도 세월에 따라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스피커로 크게 틀어 놓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직원들 중엔 그 음악이 싫었던 사람이 있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사람의 취향도 변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음악 취향이야 당연히 달랐을 것이다. 내가 좋으니 다른 도 그러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사려가 깊지 못한 생각이요 착각이었다.


아무도 싫다는 반응이나 말을 하지 않아서 착각했다는 변명도 부끄러운 핑계일 뿐이다. 그때 난 내가 심한 갑의 위치였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 직원들 중 누구도 내게 싫음을 표현하는 리스크를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내 시각으로만 직원들을 바라본 것이다. 그러니 그때의 나는 얼마나 사려 깊지 못한 것인가.


요즘도 음악을 듣다 보면 가끔씩 그때가 떠오르는데 그럴 때마다 내 얼굴은 복숭아가 되곤 한다.


배려는 위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다는 것을, 선의라도 타인에겐 특히 아랫사람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직장에선 말이나 행동 같은 겉으로 드러난 반응이 속내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놓쳤고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결국 난 부족함이 많은 직장상사였던 것이다. 생각할 때마다 낯이 뜨거워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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