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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Nov 30. 2022

'딸의 이부자리'를 깔아 놓았다

딸, 결혼 안 하면 안 돼?



아내가 오늘 저녁 딸이 술자리 약속이 있어 늦을 거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딸내미 방에 들어가 이부자리를 깔아 놓았다. 술을 먹고 늦은 시간 집에 돌아오면 씻자마자 바로 눕고 싶기 마련이다 - 많이 겪어 본 내가 그 심정을 잘 안다. 오늘 밤 자기 방에 들어선 딸은 미리 깔려있는 따스한 이부자리가 많이 반가울 것이다.


딸의 이부자리를 깔아 놓는 것은 내가 가끔 하는 일이다.

"딸내미가 좋아하겠지?"

혼자 중얼대며 미소를 짓는다.


내가 작은 딸의 이부자리 깔기를 시작한 것은 큰 딸이 결혼하여 신혼 새집으로 옮겨 간 뒤부터였다.


우리 가족이 네 식구에서 세 식구가 되고 나서부터 우리 집에서 작은 딸의 존재감은 확 커졌다. 집안에서 하는 역할이 변한 것도 있겠지만, 내가 받는 느낌이 달라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우선, 작은 딸의 잔소리가 부쩍 늘었다. 예전에는 큰 딸과 작은 딸이 역할을 나누어 내게 하던 참견을 작은 딸이 언니 몫까지 도맡아서 하고 나섰다. 딸내미의 잔소리는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술 먹는 것, 먹는 메뉴와 식사량, 운동의 종류와 강도, 저녁때 얼굴에 보습제를 발랐나 안 발랐나 등등 그야말로 내 생활 습관 전반에 걸쳐있다. 이제는 아예 국경도 없다. 매의 눈으로 아빠를 감시(?) 한다.


그리고 딸은 집안에 고요나 적막이 자리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외출했다 집에 들어오면 바로 바깥세상 보고회를 시작한다. 밖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누구이고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어떤 음식이 맛있었고 맛이 없었는지 등등 그날의 즉석 얘깃거리를 아내와 나를 앉혀 놓고 떠들어 댄다. 그런데 딸내미의 말솜씨가 보통이 아니어서 듣다 보면 어느새 재밌는 희극 한 편을 본 듯하다.


쉬는 날이면 딸은 새롭게 배운 건강식 빵을 굽기 시작한다 - 자격증 가진 전문가의 작품이라 자랑을 하면서. 아마도 따뜻한 빵을 유달리 좋아하는 나를 생각해서 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불쑥불쑥 내미는 질문이나 도움 요청에도 척척박사로 즉문즉답을 해 준다.

방금 쓴 내 글의 제목이 젊은 사람의 눈에는 어떨지, 새로 올리려는 유튜브의 썸네일은 괜찮은지, 오늘 가족 외식에는 어디 식당 어떤 메뉴가 좋을지, 건강검진은 어느 병원이 좋을지, 강연이나 인터뷰 때 입을 옷은 어떤 게 어울릴지 등등 시시콜콜한 것들이 내가 딸에게 하는 질문과 도움 요청이다.


이렇게 꼬리를 무는 부탁에도 귀찮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바로바로 대답을 주는 작은 딸은 우리 집의 현존하는 최고 해결사이다.


그러니 작은 딸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내 마음을 전할 방법도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서 나는 딸의 이부자리를 깔아 놓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찾아들었다.

작은 딸이 결혼해 버리면 어쩌지?
큰 딸내미처럼


큰일이 맞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요리저리 생각을 해봐도 해법이 보이질 않는다.


아무래도, 틈을 봐서 물어봐야겠다.

딸내미, 결혼 안 하면 안 돼?


딸의 표정이 궁금해진다.


물론, 농담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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