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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Apr 11. 2023

어른 자격증

듣기 평가와 말하기 평가


괜한 헛소리를 했나 보네.
너무 아쉬워서 한 말이었는데.
내가 한 말 사과와 함께 취소할게.
계속 수고 부탁해.



내가 옛 친구들 단톡방에 올린 사과 문자이다.


학창 시절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모이는 반창회 단톡방 이야기이다. 졸업과 함께 헤어지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이지만 몇 년째 일 년에 한 번 반창회 모임이 열린다. 그 모임이 그렇게 열릴 수 있었던 것은 반창회 친구들 중 특별한 세 친구들의 남다른 노고 덕분이었다. 그 세 친구들은 연락에서부터 행사준비까지 귀찮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올해도 여지없이 반창회 단톡방에 문자가 떴다. 세 친구 중 연락책을 맡고 있는 친구의 것이었다.


사월 모일 반창회, 기억하고 있지요?
작년에 미리 약속한 것이니
빠짐없이 그날 다 모입시다.



단톡방에서 문자를 받은 나는 불안한 마음에 폰 속 일정표를 급히 확인했다. 걱정한 대로 역시나 내 일정표의 그날에는 반창회 대신 다른 약속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얼마 전 약속한 변경할 수 없는 중요한 일정이었다.


올해 날짜는 언제 정한 거지?
기억이 없는데..
왜 일정표에 표시가 없지?



혼자서 중얼거리다, 다른 친구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반창회 공지 봤지?
너 그 날짜 알고 있었어?



전화를 받은 친구들의 대답은 모두 '나도 몰랐는데'였다.


하지만 연락책인 그 친구가 날짜를 착각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그 날짜를 정할 때 내가 딴짓거리를 하느라 듣지 못했거나 술에 너무 취해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하루를 고민 한 끝에 조심스레 단톡방에 문자를 올렸다.


미안하지만 혹시,
다른 날로 변경하는 건 어렵겠지?
실수로 일정 표시를 못했더라고.
꼭 참석하고 싶은데..



내 문자가 단톡방에 오르고 난 후 여러 친구들이 나와 비슷한 의견을 올려 왔다. 그리고 그중 어떤 친구는 '차라리 가을에 하면 어떨까?' 하는 문자를 농담처럼 올리기도 했다.


그 문자를 보고 난 아차 싶었다.


그리고 얼마 후 염려하던 문자 하나가 날아들었다.


이번 모임은 취소합니다.
가을 모임을 찬성하는 분들이
날짜를 잡아 연락 주세요.



연락책을 맡고 있는 친구가 폭탄 문자를 올린 것이다.


갑자기 단톡방에는 침묵이 흘렀다. 

나도 말문이 막혔다.


...


 

연락책 친구야 '나 마음 상했어'를 표현한 것이리라. 일 년이나 미리 날을 잡아서 다른 약속을 피하라고 했는데 여러 친구들이 자꾸 딴 소리를 지껄이니 속이 상했을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문자에 뒤따라 날짜를 변경했으면 했던 친구들도 이해가 되었다. 반창회는 참석하고 싶은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날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아 다른 날로 바꾸면 어떠냐는 문자이니, 큰 무리는 아니었다.


날짜를 기억하지 못한 것을 먼저 사과하고 혹시  바꿀 수 있는 지를 조심스럽게 노크해 본 내 문자도 크게 문제 될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따져보니 크게 잘못한 친구는 없어 보였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생각을 문자로 표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반창회 추진에 이상 기류가 발생한 것이었다. 이대로 놔두면 올해 반창회는 무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분위기를 흐리게 한 시작은 내 문자가 아니었나 싶었다. 그러니 그 꼬인 실타래를 푸는 실마리도 내가 제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사과문자'를 단톡방에 올렸다. 이 글 맨 앞의 문자가 그것이다.


하지만 단톡방은 아직도 고요를 깨지 못하고 있다.


반창회 단톡방 사건(?)을 겪으며, 나는 새삼 우리 또래와 가까운 '이순(耳順)'이란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순 근방의 나이를 살고 난 많은 사람들은 나를- 정확히는 나의 생각이나 판단을 -너무 믿는 경향이 짙다. 나의 경험을 확신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남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나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니, 그 생각을 담은 말이 쉽게 내뱉어진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내 말만 많아지는 것, 내 말과 남 말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 나이가 깔아놓은 위험한 함정이다. 그 함정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문득 나이가 들어 진짜 어른이 되려면, 그 사람의 '듣기 수준'과 '말하기 수준'을 평가하여 '어른 자격'을 부여하는 시험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듣기와 말하기 시험에서 일정 점수를 넘어야
'어른 자격증'을 주는 거다.



그런데 나는 과연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듣기 평가든 말하기 평가든 모두 공부와 훈련이 필요한 수준이 아닐까 싶다.


자격 있는 어른이 되려면,
공부를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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