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빈대디 Sep 01. 2019

'기다림'을 아는 취준생 딸이 부럽다

요즘식 <한 우물을 파기> 의 조건



나는 취준생인 둘째를 보면 부럽다.

그 시절 나와 많이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 좋아하는 분야가 명확하다. 

그리고 꼭 그 길로 가겠다고 한다.

늦더라도 그 길로 갈 거란다. 

계속 찾아다니며 기다린다.

속이야 어쨌든 느긋해 보인다. 

시간에게 초조함을 보이지 않는다.


딸의 그런 느긋함과 여유가 부럽다.


난 그렇지 못했다. 오래 기다리지 못하고 최선이 아닌 쉬운 선택지를 집어 들었다. 그 대가로 살면서 많은 갈등과 비효율 경험해야 했다. 직업을 택하는 그 시기에 한 번 어긋나면 되돌아가기가 쉽지 않다. 셔츠의 첫 단추와 같다.


문득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삶에서 ‘직업’이나 ‘일’을 ‘우물’에 비유한다면, 많은 이들이 한 우물을 파고 싶어 한다. 그래야 성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 내 주변을 봐도,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이 말년에 가서 좋지 않은 성과를 만드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오랫동안 한 분야를 깊이 파다 보면 결국은 원하는 목적지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그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한 우물을 파려면 꽤 까다로운 조건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



첫째,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처음 선택하는 일이나 분야가 정말로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그것이어야 한다. 한두 해 하고 그만둘 것이 아니니 오래 해도 싫증이 나면 안 된다. 계속하고 싶은 일이어야 한다.



둘째, 방향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한 직장에서 정년 때까지 일하는 시대가 아니다. 끊임없이 준비해서 ‘이직’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때 중요한 포인트는 내가 정했던 그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다. 우왕좌왕하면 안 된다. 주춤거리고 비틀거리더라도 목표를 바라봐야 한다.



셋째, 인내심이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시작을 하려면 기다려야 한다. 그 분야를, 그 일을 만날 때까지. 늦어지더라도 기다리던 것을 포기하고 다른 것을 택하지 말아야 한다. 힘들더라도 기다려야 한다. 내가 바라는 그 인연을 만나려면 고통스러운 인내가 필요하다. 참을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다섯째,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기다리다 보면 많은 유혹과 갈등과 마주한다. 그 길만이 길인가? 그 길만이 잘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우선 저 길로 가다가 그 길로 바꿔 타면 안 되나? 이런저런 모습의 유혹과 갈등을 이겨내려면, 자기 판단과 생각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래야 인내도 가능하고 기다림도 가능하다.



여섯째, 지속적인 조정과 보강이 필요하다.

수많은 선택과 이직을 만나고, 그럴 때마다 예외 없이 변화된 환경을 만난다. 변화된 환경에서 나의 목표를 확인하고 접근로를 재 설정해 가야 한다. 오르막, 내리막, 비탈짐에 따라 길을 걷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뛸 때와 걸을 때 그리고 쉴 때를 구분해야 한다. 먼 길이다. 지구력이 필요하다.  






어느 시대보다 불확실하고, 취업이 어려운 이 시대이다. 그래도 조급하지 말자. 출발 몇 년 늦는 것이 이 삼십 년 후의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결국은 최종 목적지로부터 거꾸로 계산하여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어떤 분야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냈느냐가 인생의 결실을 결정한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스타트를 끊는 순서와 최종 결승테이프를 끊는 순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빨리 시작하려고 서두를 이유가 없다.


나는 응원한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것이라고 믿는 그 길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는 이들을.


나는 믿는다.

차분한 가슴으로 기다릴 줄 아는 이들이 진짜 자기 길을 찾아 출발할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이 청년들의 현명함이 부럽다.


공짜가 없는 것이 인생이란다. 기다림의 인내 뒤에는 반드시 자신이 바라던 그 길이 있다.


그 길을 꼭 잡아서 시작하기 바란다.


우리 딸의 그 길 찾기도 응원한다.






2019년 9월, 인턴 '투빈대디'

매거진의 이전글 <대기업 취업>의 안과 밖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