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는 실패와 좌절의 자리를 없앤다
얼마 전 우연찮게 한 사회적 기업이 주관하는 중년들을 위한 교육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열네 명의 중년들이 그 과정의 동기생들이었다. 약 두 달 동안 매주 이틀씩 모여서 교육을 받는 그런 과정이었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집합교육이었다. 교육내용도 흥미롭고 유익했다.
교육을 마치고, 교육기간 동안 친해진 우리는 헤어지기가 아쉬워 모임을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정기적인 모임 장소 확보와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시의 50플러스 센터의 공식 커뮤니티에 등록을 신청하여 자격까지 취득했다.
나에게 그 교육과정의 매 순간은 행복 시간이었다.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을 학교와 비슷한 환경에서 만나 함께 한 시간은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이어서 그 인연이 새로운 커뮤니티로 발전된 것이리라.
살면서 커뮤니티의 의미도 달라지는 것 같다.
어쩌면 커뮤니티는 옛날 어른들의 계모임의 다른 이름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몇 년 전에 젊은이들 사이에 유료가입 커뮤니티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 커뮤니티는 상당 수준의 가입비를 내야 하고, 나름의 엄격한 선별과정을 통해 가입자를 받았다. 그렇게 가입한 커뮤니티는 책을 읽고 토론한다는 좋은 취지 아래 주제별로 소그룹 모임을 갖게 하는 형태였다.
한 동안 선풍적인 붐을 이루었다. 우후죽순처럼 유사한 커뮤니티들이 뒤를 이었다.
이런 커뮤니티의 특징을 두 가지로 줄여보면,
첫째, 소위 간지가 나는 커뮤니티여야 한다.
남과 차이나는 우월감을 주어야 한다. 이 커뮤니티의 일원임을 밝히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뭔가가 있는 것처럼 비쳐야 한다.
둘째, 선별된 집단이어야 한다.
커뮤니티 가입 때부터 엄격한 사전심사를 통해 소위 품질이 보장된 사람들의 집단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다른 구성원이 자신의 커뮤니티 멤버임을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직업, 사회적 위치, 평판 등을 골고루 따져서 가입 승인을 한다.
이런 기조로 크게 일어났던 붐은, 시간이 지나면서 앞에서 말한 기준들을 지키지 못하고 조금씩 무너지면서, 그 붐도 거품처럼 사그라졌다. 하지만 한 동안 우리 사회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현상이었다.
그렇다면 좋은 커뮤니티는 어떤 얼굴을 가질까?
주관적이지만 그냥 바람직한 것들을 나열해 보자.
커뮤니티의 첫 번째 목적은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을 위한 모임일 것이다. 소통이 잘 이루어지려면 대화의 상대들이 비슷한 지적 수준과 사회적 경험 그리고 비슷한 생각 지향 등을 갖추고 있으면 좋을 것이다. 나와 대화를 나눌만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 모임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의 커뮤니티는 비슷한 수준의 품격을 가진 사람으로 구성되어야 오래가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발이든 평가든 어떠한 형태로든 선별의 과정을 통해 일정 수준의 품격이 확인되는 또는 예상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 커뮤니티의 깊이와 지속성을 확보하는 기본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로 커뮤니티에도 리더십이 중요하다. 적절한 리더가 있고 그 리더와 협력하여 각자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리더십이 없다면 그 커뮤니티는 머지않아 균열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냥 좋아서 만나는 그런 모임은 오래가지 못한다. 같이 추구하는 목표점이 있을 때, 소통도 좋고 구심력과 지구력도 갖출 수 있게 된다. 커뮤니티의 모든 구성원들이 동의하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조건들은 지극히 주관적 관점에서 도출한 것들에 불과하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듯이, 커뮤니티도 다양한 지향이 있을 것이다.
결국, 내게 맞는 커뮤니티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맞아떨어지면 되는 것이다.
커뮤니티는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나열한 조건들은 의미 없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는 우리에게 많은 긍정 효과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
내게 맞는 커뮤니티는 나에게 이런 것들을 준다.
커뮤니티는 그 모임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가져다준다. 오랫동안 속했던 조직과 사회를 떠나 혼자라는 느낌을 받을 때에 더욱 그 느낌을 갖는다.‘나는 우리 커뮤니티의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커뮤니티는 옆 사람에게 내 팔을 올리고 옆 사람들의 팔을 내 양 어깨에 올려서 만드는 어깨동무를 하게 한다. 어깨동무를 하고 나면 일단 마음이 든든하다. 설사 내가 비틀거리거나 넘어지려 하더라도 옆 사람의 어깨가 나를 지탱해 주니 금세 자세를 바로 할 수 있다.
어깨동무를 하고 있으면 따뜻하다. 옆 사람의 체온이 절로 내 어깨를 따라 내 몸으로 전해 온다.
어깨동무가 풀리지 않으면 난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커뮤니티 효과가 나타나는 첫 번째 피상적인 현상은 카톡이다. 단톡방에 매일 매 순간 카톡 알람이 울린다. 특히 중년 남성에게 단톡방이 계속 울리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일 것이다. 잠잠하던 카톡이 쉼 없이 존재를 알릴 때, 나는 생기를 느끼고, 내가 청년들의 세계로 들어간 듯한 즐거운 착각도 한다.
공동의 목표는 이야깃거리를 자연스럽게 설정해 주고, 이야기가 그 방향으로 향하도록 나침반 역할도 해 준다. 직장동료들과의 술자리가 잦고 나눌 말이 많은 이유도 그들과는 같은 주제를 안주 삼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동의 목표는 공동의 이야깃거리와 안주 거리를 제공한다.
여럿이 소통을 자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각자가 획득한 정보를 다른 커뮤니티 멤버들과 공유하게 된다. 그 관계가 돈독해져서, 서로를 아는 깊이가 더해지고, 느끼는 가까움이 더 할수록 더 많은 정보를 주고받게 된다. 좋은 커뮤니티는 좋은 정보가 넘친다. 커뮤니티에서 정보는 덤으로 따라온다.
잘 돌아가는 커뮤니티는 멤버들 간 숨김이나 부끄러움을 없애서, '실패'의 전적을 솔직하게 꺼내게 하고 그것을 깨끗하게 세탁하여, '좌절'이 들어설 자리를 없애 버린다.
좋은 커뮤니티 하나면 좌절 없이 늘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이처럼, 커뮤니티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세상의 메인스트림에서 멀어질수록,
그리고 커뮤니티의 구성원의 삶이 다양할수록,
새로운 커뮤니티가 가져다주는 효과도 크다.
지금 시작한 이 커뮤니티와 함께하는 내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