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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페이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열정이 미끼로 변했다는 건

by 투빈대디


얼마 전 한 회사의 직업상담사 모집에 추천을 받아 면접을 하였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취업 관련 코칭과 매칭 서비스를 하는 창업 7년 정도 된 한 사회적 기업이었다. 마침 지금까지 내가 찾던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직업상담사 자리였기에 기대가 컸다.


면접 가기 전에 추천해준 기관의 컨설턴트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의 코칭 핵심은,


'부드럽게 웃으며, 최대한 편하게 말하는 것만 신경 쓰라. 면접관이 결국 일을 시킬 사람이니, 그가 나를 부담스러워하지 않도록.'


이였다.


두 달 가까이 나를 지켜보고 여러 차례 나와 면담도 한 담당 컨설턴트가 한 말씀이니 객관적 판단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날의 면접 전략을 몇 가지 결정했다.


첫째, 처음부터 끝까지 얼굴에 미소를 놓치지 말자.


둘째, 목소리 톤을 높이지 말고, 낮은 자세를 끝까지 지키자.


셋째, 끝까지 경청하고 말을 줄이자.




면접장에 도착하니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 빨랐다. 앞선 면접이 진행되고 있었다.

휴게실에 앉아 대기하다가 안내를 받아 면접장에 들어섰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두 사람이 면접관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자기를 소개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 중 누가 대표인지 궁금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리라 생각하고 묻지 않았다.


거리를 두고 앉아서 면접자인 나만 마스크를 벗게 하였다.


미소를 짓고 인사와 자기소개를 준비한 대로 했다. 그리고 면접이 50분 정도 진행되었다. 면접은 어느새 열띤 토론의 장이 되어 갔다.


질문에 따라 답변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내가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 아닌가?’

‘너무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지금 웃으며 말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당초 세웠던 전략을 지켜내려 노력했다.


누가 면접자 인지 면접관 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50분 면접 토론'이 지나갔다.

면접이 끝나고 나오는 길에 추천한 곳을 통해 결과를 알려 주겠다는 말을 듣고 면접장에서 나왔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내가 직접 회사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면접 때 면접관 중 한 사람이었던 여성 임원과 통화를 하였다.


‘면접한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연락이 없어 전화드렸다. 결과를 알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녀는 ‘많은 고심을 했는데 결국 선생님을 선택하지 못해 저희들도 아쉽다’라고 말했다.


난 다시 물었다.


"제가 선택되지 못한 이유를 솔직히 말씀해 줄 수 있나요?"


"다음을 대비하기 위해 저의 부족한 점을 알고 싶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사업의 중대성과 시급성을 감안하여 결국 유경험자를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만간 대표가 내게 메일을 통해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며칠 뒤, 그 회사의 대표로부터 장문의 메일이 왔다.


'선택하지 못해 아쉽다. 많은 고심을 했으나 현실적으로 유경험자가 필요하다 판단했다.

그러나 당신과의 대화에서 많은 인사이트를 받았다. 시간이 허락되시면 다시 한번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후 한 식당에서 대표와 둘이서 만났고, 그의 제안을 들었다.


"선생님과 함께 새로운 상담 클래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나의 경력을 그대로 보내긴 너무 아까 우니 함께 새 클래스를 만들어 운영해 보자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가 돌려 돌려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첫째, 당신을 고정비용을 부담하며 상근으로 고용할 수는 없다.


둘째, 그래도 버리기엔 아까 우니 새 클래스를 하나 만들어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셋째, 새 클래스는 일단 무보수로 경험을 쌓는다 생각하고 시작하자.


넷째, 성과가 좋으면 정규 클래스를 만들면서, 그때 여러 조건을 다시 논의하자.


그는 내게 직업상담사 경력에 대해 계속 강조했다. 그리고 자기가 이 자리에서 제안한 것이 나의 직업상담사 경력을 만드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난 대답했다.


'대표님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린다. 나도 대표님의 제안이 내게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제안 내용이 좀 더 구체화되면 연락 바란다. 그것을 놓고 판단하면 좋겠다.'라고.

물론, 내가 그의 속내를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 만큼 살다 보니 '뚝 잘라내는 것'이 바보짓인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젊은 사람들이 열정페이의 함정으로 빠지는 것이 구나.


경험과 경력이란 것이 이렇게 미끼로 활용되는구나.


경험 없고 갈망이 앞서는 젊은이들은 이런 제안을 거부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냉정하게 되새김해 봐야 한다.

상대의 제안을 받으면 그들이 원하는 속내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생각한 후에 답해도 늦지 않으니까.

이번 경우도, 그 대응결과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열정페이 사건(?)이 아니길 바라면서...


설사 열정페이라는 결론이 나더라도,

내가 슬퍼하거나 화낼 일은 없을 것 같다.


열정페이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열정적고 열망이 강하다'라고 상대방이 느꼈다는 말일 테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열정과 열망이 내 속에 살아있는 한,

나는 아직 청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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