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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최종합격'...

무엇이 합격을 만들었을까?

by 투빈대디


그날도 오후 늦은 시간 동네 뒷산 산책로를 걷고 있었다.


“띠딩~”

하는 알람에 폰을 열어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발신처가 서울시였다.

일순 몸이 조금 경직되는 듯했다.

문자를 열면 며칠 전 본 면접의 결과가 나오리라.

숨을 들이쉬고 문자를 열었다.


‘○○○님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의 꽤 많았던 도전과 실패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내가 전혀 새로운 분야인 세 번째 직업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선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올 초 한 사회적 기업이 주최하는 ‘5060 신중년 역량강화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곳에서 배운 것 중

내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이력서 쓰는 법’

이었다.


이력서나 자소서가

자신을 상품화하여 홍보하고 마케팅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그때까지 나에겐 없었다.


그런데, 새로 배운 이력서 쓰는 법은

순서대로 나열하는 연대기 이력서가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몇 개로 압축하고 경력의 논리로 뒷받침하여 자신을 소개하는

'핵심역량 이력서'라 불리는 접근이었다.


그곳에서 배운 이력서 쓰는 법은

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버렸다.


나는 그곳의 가르침에 따라,

새로운 스타일의 내 이력서와 자소서를 만들었다.


사진까지 바른 자세의 여권사진 대신

새로 찍은 세련된(?)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었다.


만들고 보니

전혀 다른 내가 거기에 있었다.


그렇게 만든 이력서로 이곳저곳 지원을 했다.


그러고 나서 놀라운 변화를 만났다.


그 전에는 거의 오지 않던

‘서류합격’ 통보 문자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3월 말부터 두 달여 동안

여섯 번의 면접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다섯 번 연속 낙방하고 마지막 여섯 번째 면접에서 합격하였으니,

‘5전 6기’?


이력서의 변신이 서류합격을

가져다준 것이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여섯 번의 면접 중 마지막만 합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여섯 번째 면접이 이전의 것들과 다른 것이 무엇이었는가?



첫째, 면접 질문을 단순한 시험문제로 대했다.


이전 면접에서는 면접관의 질문을 인격체인 나에 대한 질문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보니 어떤 질문에는 속으로 큰 불쾌감을 느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면접을 임할 때는

면접에서의 질문을

그냥 시험지의 문제 하나,

배점이 매겨져 있는 문항 하나로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하고 면접장에 들어갔다.


그랬더니

어떤 질문도 나의 감정을 건드리지 못했다.


난 단지 아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대답한 게 다였다.



둘째, 지원한 직무가 내 이력과 어울렸던 것 같다.


내가 아직 해보지 않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다 생각하고 주장해도,

그 일을 잘 알고 있는 관리자인 면접관의 평가는 다를 수 있다.


요즘 출근해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전에 면접했던 직무는 나와 맞지 않는 일이었을 수 도 있다.

그러니,

지난번 낙방은 운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직무에 적합하지 않았을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운이 좋게도 합이 맞는 일을 만난 것이다.



셋째, 답하지 못할 것은 깨끗이 인정했다.


이번 면접 때, 면접관의 질문 중 구체적인 숫자가 포함된 것이 있었고, 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는 솔직하게 그 내용이 지금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렇게 답 한 후,

근무하게 된다면 규정과 지침을 확인하여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적인 업무에서는

'정확한 처리'가 '신속한 처리'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점을 공략하고자 한 것이다.


면접관이 이 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전업(轉業) 이직' 도전에서

합격이라는 결과를 만난 것은

내게 큰 행운임에 틀림이 없다.


이 일을 하면서

나는 이미 행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 보인 적이 없는 나의 역량과

이 일의 합을 정확히 알아보고,


색다른 이력의 나이 든 사람을 합격시켜

이 일을 하게 해준,


서울시의 공무원 누군가의 통찰력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감사도 전하고 싶다.






- 지하철 출근길 중고신입의 합격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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