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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 만의 출근기

지하철에서 쓴 중고 신입의 출근 감상문

by 투빈대디

며칠 전부터 나는

서울시의 일자리매니저라는 단기계약직으로 채용되어

서울의 한 구청으로 출근하였다.


한참을 헤아려 보니,

남이 주는 월급을 받는 직원이었던 것이 벌써 18년 전 일이었다.

급여를 주는 입장이었던 두 번째 직업에서,

이제 매월 급여를 받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중고(?) 신입사원으로 출근한 첫날은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하여,

근처 동네 한 바퀴를 한 후에 사무실로 향했다.


구청의 내 발령처를 들어서니,

내게 주어진 일은 청년일자리 멘토링이었다.


꽤 오랫동안 내가 하려고 했던 세 번째 직업이다.

최근 2년 동안 꽤 많이 도전하고 실패하였던 바로 그 일이었다.


이번 면접 때 이 일을 꼭 하고 싶다고 어필해 보았던 것이 면접관들의 마음에도 통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세 번째 직업의 출근과 퇴근길에는 왕복으로 두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긴 출퇴근을 하는 것이 꽤 힘이 들었나 보다.

며칠간 퇴근하면 이른 시간에 침대로 향하곤 했다.

그러나 점차 괜찮아지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내게 가장 힘든 일은

‘9 to 6’, 정시출근 정시퇴근이다.


오랫동안 시간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출퇴근했던 습관으로 인해,

정해진 시간을 반드시 지켜 근무해야 하고,

그 긴 시간(?) 동안 좁은 사무실의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이 내 몸 힘이 들었나보다.


오랜 습성 때문이리라.

첫 번째 직업 때는 이 보다 더 오래 그렇게 근무했지만 힘든지 몰랐는데 말이다.


주변엔 모두 늘공이라 불리는 공무원들이고 나 홀로 이방인의 신분인 것,

직장 생활 중 늘 중심인으로 자리했던 내 위치가 이제 철저히 주변인으로 바뀐 것 등,

달라진 상황들을 머리는 잘 인지하고 있지만 가슴은 아직 생소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침 출근길은

내가 그 복잡한 행렬 속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를 만들어 주고,

여섯 시 퇴근길은

힘든 노동이 가져다주는 기분 좋은 피곤함으로 오히려 편안함을 준다.






얼마 전부터 내가 멘토링해야 할 청년들을 찾아가 직접 만나기 시작했다.


그 만남은

내가 이 일을 해야 할 이유를 확인시켜 주고,

내가 찾던 보람이라는 가치를 가져다준다.

나는 청년들의 눈을 마주하고 앉아,

청춘들의 고민, 좌절, 꿈을 가슴으로 듣는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과 도전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그러다

살짝 내가 보는 세상을 그들의 이야기에 보태어 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선택의 너비는
청춘들이 걱정하듯이
좁지가 않다고.

인생은
순간순간들이 결정할 정도로
짧지도 않다고.

세상에서 가장 센 무기는 시간이며
청춘은 그 시간의 부자라고.

그래서
청춘은 그 자체가 능력이라고.


만약 청춘인 그대가 추구하는 그 무엇이

그대와의 만남을 거부하면,

그냥 헤어지면 된다.

망설임은 필요 없다.


당당하게 그것과 이별 선언을 하고,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다시 출발하면 된다.


었다 생각되면,

인생의 긴 여정을 떠올리면 된다.

그 늦음은 인생과 견주면 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춘은 곳간에 시간을 쌓아둔

시간 부자이니까.






이렇게 청춘들과 떠들다 보면

벌써 하루가 간다.


이것이 내가 행운과 함께 만난

나의 세 번째 직업이다.


세 번째 직업을 만난 나에게

축하를 보낼 수밖에...



- 출근길 지하철에 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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