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 동안 스무 명이 넘는 청년들을 만났다.
공공 일자리에서 2년 정도 직업 경력을 쌓아서, 자신에게 맞는 인생 일자리로 취업하려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청년들이다.
청년들이 일하고 있는 일터를 찾아가 분위기를 살피고,
그곳의 책임자나 관리자와 잠깐의 대화를 나눈 후
청년들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보통의 순서이다.
내가 처음 청년들을 만나러 갈 때,
스스로에게 다짐한 게
‘경청하자’였다.
나는 청년과 마주 앉아
그의 지금 상황과 스스로 설정한 취업이나 진로 계획을 열심히 귀담아 들었다.
그러다 잠깐잠깐 조심스럽게 내 생각을 대화 속에 끼어 넣었다.
청년이 말하는 진로나 취업 방향에 대한 내 생각을 덧붙이는 식이었다.
자연스럽게 청년과 나 사이에는 대화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고,
시간은 순식간에 한 시간을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대화가 끝나면
예상 밖 긍정적 반응이 나타나곤 했다.
청년들에게는 나 같은 30년 묵은 직장 경험자와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처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청년들의 긍정적 반응은 나를 고무시켰다.
나는 계속된 청년들과의 대화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의 생각을 표현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진정과 열의가 청년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그렇게 여러 차례의 대화가 진행되었다.
그러다 문득,
청년이 주인공인지 내가 주인공인지 구분이 안 되는 대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아차~’했다.
청년들의 눈 속에서 또 다른 감정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소위 '꼰대'가 된 것일까?
그 대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생각은 깊어만 졌다.
언제부터 ‘경청이란 대화의 첫 단추’를 잃어버린 것일까?
스스로 나를 소개할 때면 늘 등장시켰던
‘소통의 달인, 경청 능력자’
라는 기본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다.’
‘경청’의 사전적 의미이다.
대화에서 맞은편 사람의 말을 놓치면,
그 대화는 나 혼자만의 독백과 다름없어진다.
맞은편에게 경청하지 못하면,
맞은편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들어주면, 들어준다.’
대화는 상대의 말을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읽고,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연다.
그러니,
경청은 대화의 시작이자 끝이다.
경청의 능력이 곧 소통의 능력인 것이다.
경청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것에는 꽤 많은 조건들이 요구된다.
경청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상대의 말과 마음을 들으려는 진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귀가 열린다.
경청에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끈기와 기다림이 있어야 상대의 말에 끝까지 귀를 기울일 수 있다.
.
경청에는 공감이 필요하다.
경청은 상대의 말을 따라 상대의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상대의 마음과 같이하는 동기화가 필요한 것이다.
경청에는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다.
경청한다는 것은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존중하고, 상대의 입장을 배려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경청은 출발할 수 있다.
경청에는 겸손이 필요하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마음이 있어야 경청이 가능하다.
경청은 겸손함을 표현하는 대표적 행동이다.
경청에는 미소가 필요하다.
귀를 기울이고 주의를 놓치지 않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듣는 동안 미소를 띠우고 상대와 아이콘택을 한다.
그래야 신이 난 상대가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더 많이 더 깊이 쏟아내게 된다.
미소는 상대에게 보내는 나의 강력한 긍정의 신호이다.
이렇게 복잡한 ‘경청’이란 무기를 들고
다시 청년들의 속 마음을 만나러 가야겠다.
이 좋은 경청을 통해 청년들과의 아름다운 소통을 시작해야겠다.
맞은편의 사람이
누구이든
진짜 대화를 나누고 싶으면
경청으로 그 대화를 시작만 하면 된다.
갑자기 청년들이 더욱더 보고 싶어 진다.
지하철 출근길 단상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