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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Feb 04. 2022

낙엽 기행문: <태강릉>은 세계문화유산이 맞았다

낙엽의 소리와 향기로 마음까지 샤워하다



어느 가을날 휴일 아침, 혼자서 낙엽을 밟는 가을여행을 출발했다. 그날 나의 낙엽 낭만여행의 목적지는 서울 북동쪽 노원구에 위치한 '태강릉'이었다. 지하철을 이용해 태릉과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6호선 ‘화랑대역’에서 내렸다. 화랑대역에서 목적지인 조선왕릉 ‘태릉’의 정문 입구까지의 거리는 약 1.7km였다. 스마트폰 지도에게 물어보니 화랑대역 1번 출구에서 태릉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10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나왔으나, 나는 늘 하던 대로 그냥 걸어서 가기로 했다. 화랑대역 4번 출구에서 나와 태릉방향으로 20분 정도 걸으니 태릉 입구에 도착했다.


태강릉은 태릉과 강릉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태릉과 강릉에는 각기 정문 매표소가 있다. 11월에 막 접어든 그날의 관람 가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였다. 태강릉 관람은 오전 9시부터 시작하여 계절에 따라 마감시간이 오늘보다 봄에는 30분(오후 6시) 여름에는 1시간(오후 6시 30분) 더 늦추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태강릉의 입장은 관람 마감시간 1시간 전까지 허용된다고 한다. 입장료는 1000원짜리 한 장이면 되었다.


입장권을 끊어 정문을 통과 '태릉'에 들어서자, 왼편으로 ‘조선왕릉전시관’이 보였다. 나는 그곳을 그냥 지나서 오른편 태릉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잠시 후 바로 낙엽길이 나오고 그 길에 쌓인 낙엽은 발등 위를 덮을 정도였다. 낙엽을 쌓아 만든 푹신한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바사삭 바사삭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소름처럼 귀를 간지럽혔다. 보드랍고 편안한 폭신한 낙엽 포장(?) 길의 느낌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길 위에 켜켜이 쌓여있는 낙엽들이 내뱉는 진한 낙엽 향이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코를 거쳐 가슴속까지 파고들었다. 온몸의 오감을 통해 전해오는 낙엽 숲길의 기분 좋은 자극은 걷는 이의 머리까지 몽롱하게 만들어 버렸다.


“아, 이게 얼마만인가?”

“그런데 여긴 도대체 어디지?”


만나고 있는 그 찰나가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혼자서 읊조렸다.


강렬한 황홀함과 지극한 자극이 나를 딴 세상으로 옮겨 놓았다. 참 오랜만에 낙엽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걸었다. 그 길이 계속되길 바라는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졌다.



낙엽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널찍하게 펼쳐져 있는 노송 숲 아래 낙엽 깔린 마당에 이르렀다.


멀리 태릉의 홍살문이 보이고, 그 너머 정자각 그리고 그 너머로 언덕과도 같은 태릉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이 신성하고 격식을 갖춘 곳이라는 것을 나타낸다는 홍살문 옆에는 태릉을 알리는 비석이 서있다. 홍살문을 지나니 바닥의 높이를 달리하는 두 가지 돌길이 나란히 정자각을 향해 뻗어있다. 이 두 길은 높이에 따라, 왼쪽의 조금 높게 조성된 길은 향과 축문을 들고 다니는 ‘향로’로 선왕의 혼령이 다니는 길이라고 하고, 오른쪽의 조금 낮게 조성된 길은 제향을 드리기 위해 왕이 다니는 ‘어로’라고 한다.


나는 사람–왕도 사람이다-이 다니는 길인 어로를 걸어서 태릉을 향했다. 태릉은 1565년 조성된 조선 11대 왕 중종의 비 ‘문정왕후의 능’이다. 이 태릉은 강릉과 함께 ‘태강릉’이라고도 불리는 데, 태강릉은 2009년 ‘조선왕릉 세계유산’으로 유네스코(UNESCO)’에 등재되었다.


태릉 주변에는 낙엽이 겹겹이 쌓여 발목까지 빠지는 널따란 평원 위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여유롭게 서있는 활엽수 나무들이 쉬지도 않고 낙엽들을 흩뿌리고 있었다. 이곳을 걸어 지나다 보니, 낙엽들의 조잘거림과 부드럽고 탄력 있는 폭신함 그리고 나도 몰래 킁킁대며 콧구멍을 넓히게 하는 낙엽의 고급진 천연향기를 온몸으로 음미하며 즐길 수 있었다. 나는 그 느낌을 놓치기 싫어 낙엽 걷기를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문득 사람 키 보다 더 큰 숲길안내 깃발이 서있었다. 태릉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숲길이 었다. 태릉 뒷산에 조성된 이 숲길은 언덕을 너머 강릉과 만나게 해 준다. 이 숲길은 봄과 가을 두 차례 한시적으로 개방되는데 그 거리는  2km 정도이다.


숲길을 따라 언덕을 올랐다. 이미 낙엽들이 여러 겹으로 포개어 쌓인 숲길에는 뒷 늦게 낙엽이 된 가을 잎사귀들이 바람을 타고 비가 되어 내리고 있었다. 낙엽 비가 내리고 있는 그 숲길은 그냥 걷기만 해도 누구든 영화 속 주인공이 되게 하였다. 숲길이 한시적으로 개방되어 평상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서 그런지 숲길 위에 쌓인 낙엽은 여전히 생잎 같은 생생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숲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태릉과 강릉이 갈리는 분수령 고개가 나왔고, 고개 너머로 이어지는 내리막 길을 따라 걸음을 재촉하니 금세 강릉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강릉'은 1567년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태릉의 주인공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조선왕조 13대 왕)과 ‘그의 비 인순왕후’의 능이다. 강릉의 능 형태는 태릉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아 보였다. 다만 능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과 너비 등 주변 환경은 태릉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강릉도 태릉과 마찬가지로 화랑로 쪽으로 정문이 있고, 태릉 뒷산의 숲길을 통해서도 진입이 가능하다.


만약, 태강릉 투어를 한다면 태릉을 둘러본 뒤 뒷산 숲길을 통해 강릉으로 넘어와 강릉을 보고 나서 강릉의 정문으로 나가는 코스가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 있는 낙엽의 낭만을 즐기기에 딱 좋은 장소, 태강릉을 가을 낙엽 여행지로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꼭 한번 가보길 권한다.





내 만났던 그 느낌과 맛을 영상에 담아보았다.

글로 표현한 태강릉이 궁금하다면 영상에 담긴 태강릉의 향기를 느껴보기 바란다.

https://youtu.be/yAKCvwYHk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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