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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Mar 02. 2022

'편지' 한 장이 가져다준 '선물'

나만의 소확행 '편지 쓰기'



며칠 전 옛 친구의 생일이었다. 그날 나는 그에게 생전 처음 편지 한 장을 썼다. 나는 그 편지 한 장으로 친구에게 진심 어린 생일 축하를 전할 수 있었고, 내 안 깊은 곳에 있던 그 친구에 대한 묵은 미안함까지 덜어 낼 수 있었다.


세월 탓일까?

요즘의 나는 예전의 나보다 얼굴이 두꺼워진 게 틀림이 없다. 마음엔 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 표현으로 옮기지 못했던 것도 이젠 술술 별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서? 

무엇이 중한지 이젠 알게 돼서?



아무튼 요즘 나는 내 마음을 표현한다,

 쓰기를 통해서.

예전처럼 편지지에 펜으로 쓰는 건 아니지만, 카톡으로, 문자로, 밴드의 글로 편지를 다. 마음이 생기면 생각을 정리한 다음 손가락을 움직인다. 봉투 우체국필요 없다. 그 마음을 글로 옮기면 된다.


내가 편지를 쓰는 대상은 주로 만난 지 오래된 친구들인데,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든 상관이 없다. 생일 축하 편지가 많다. 비록 내가 기억하는 생일은 몇 개가 되지 않지만, 카톡이나 밴드 같은 곳에서 생일이 된 친구를 친절하게 알려주니 일부러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가 폰 화면에  친구의 생일 알림을 보면 그에게 축하를 해 주고 싶졌다. 그런데 문자 몇 자로 된 축하인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영혼 없는 축하행렬에 줄을 서는 것 같아서였다.


무언가 특별한 축하를 전하고 싶었다. 그러다 생각 게 편지를 쓰는 것이었다. 한 두줄의 문자가 아닌 제대로 된 편지를 쓰는 거다. 그 속에 나의 진심을 담고, 그와 내가 함께했던 추억을 담는 거다. 그게 나의 생각이었다. 물론 내가 그런 편지를 받아본 기억은 없다. 아마 친구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래, 진짜 마음을 담은 선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내자."


그것이 내가 편지 쓰기를 시작한 출발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편지 쓰는 나에게 많은 것을 새롭게 알려주었다.



편지 쓰기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편지 받을 사람을 떠올리고, 그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어떤 사람인지, 그와 같이 했던 인연과 사건들을 되돌려서 보기도 하고, 과거 그가 했던 행동이나 말은 어떤 의미를 품고 있었는지, 그의 어떤 것이 내게 고마움이나 다른 감정들로 다가온 것인지 등을 다시 해석하게 된다.

편지 한편쓰고 나 상대방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편지를 쓰면, 상대방에 대한 나의 진심을 정확히 파악하게 된다. 내가 그에게 느끼는 마음이 어떠하며, 그 마음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 마음의 크기가 얼마만큼 인지를 명확하게 알게 된다.

놓쳤던 내 속마음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편지를 쓰고 나면, 상대방에게 지고 있던 마음의 빚을 전부든 일부든 갚았다는 심리에서 마음의 부채를 덜어내게 된다. 편지 한 장으로 천냥 빚과도 같은 마음의 무게를 덜어낸다고나 할까. 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뜻깊은 선물을 했다는 마음의 채권도 갖게 된다. 친구에게 마음의 부채를 덜어내고 마음의 채권까지 갖게 되니,

그 친구 여유 있게 대할  된 것이다.



또한,

편지 쓰기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을 정확히 알게 되며, 찜찜하던 마음의 부채까지도 날려버리니, 관계 더 진지하고, 더 넉넉하며, 더 편안하게 진화한다. 

둘 간의 관계가 무엇인가 새롭게 다시 시작되는 것 같다.



이렇게 편지는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는다.


편지를 받은 이의 반응도 다양하다.

어떤 이는 편지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답장을 하고, 어떤 이는 편지를 받고 나서 직접 전화를 걸어 목소리로 답장을 하기도 하며, 또 다른 이는 선물을 보내겠다며 주소를 물어오기도 한다.

그들이 보내온 답장의 모양은 다르지만, 답장 속의 의미는 '고마움'이나 '새로움' 또는 '가까움' 등으로 표현되는 '행복한 감정'일 것이다.



삶의 시간이 쌓여 갈수록,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표가 나게 표현하고, 표가 나게 반응하는 것'에서 차차 멀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밖으로 표가 나게 속내를 표현한 편지를 받아 든 이의 반응은 늘 뜨겁다.



그러면,

내가 '편지 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진심이 담긴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나 보다.

편지만큼 내 속내를 털어놓기 좋은 공간도 없다. 실제로 '표현이라는 행위'가 없다면 가슴속 내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달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편지 쓰기가 바로 그 표현의 행위인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지금이야 말로 가장 이른 때라 했던가? 그래서 지금 바로 시작한 것 같다.


허해진 마음의 창고를 채우고 싶었을까.

고마움과 같은 속 마음은 내가 상대방에게 주면 줄수록 오히려 내가 더 마음 부자가 되게 한다. 편지를 쓰는 것이 바로 그렇게 마음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옛 친구와의 새로운 시작을 기대했었는지 모른다. 

편지는 고목처럼 굳어있던 좋은 이와의 소중한 인연에 새살이 돋게 해 준다. 편지를 쓰고 나면 그와의 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생긴다.




고마웠지만 그 마음을 미처 전하지 못했던 이에게 내 속내를 담은 편지를 써서 전하고 나면 내 가슴의 온도는 더 따듯해지고 내 얼굴엔 미소로 채워진다.

그러니,

내게 '편지 쓰기'는 바로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확실히 만나게 해주는 '나만의 소확행'인 셈이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보자.

 그러면,

 오래된 '고목'에
 연녹색의 '새움'이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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