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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빈대디 Jun 20. 2022

미안, 속삭이지 못해서…

속삭임이 그리운 것은



휴일 저녁, 나는 옛 시절 선배들과 저녁식사 겸 술자리를 가졌다.

을지로 3가의 한 고깃집에서였다.


대학 때 만났으니 만난 지가 벌써 수십 년이 넘도록 함께 해온 선후배들끼리의 자리였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일행 중 누군가의 전매특허(?)인 '친친주'라 불리는 소주, 맥주, 사이다를 융합한 폭탄주를 만들어, 연거푸 몇 잔씩 건배를 하였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으레 그렇듯이 수십 년 친구(?)들인 선후배들이 뭉쳤으니, 그날의 주제는 아련한 추억 테이프 되감기와 앞으로 함께 놀 궁리였다.


모두 흥에 겨워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손짓 발짓의 행동반경은 점점 커져만 갔다.

시쳇말로 유독 ‘기분이 업’된 한 선배의 목소리는 그 데시벨을 높게 끌어올렸다.


문득, 아차 싶었다.


“쉿!”

하고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데며 목소리를 낮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이미 행복바이러스에 지독하게 감염되어버린 그 선배는 신호를 보지 못했다. 어쩌면 보고도 모른 척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식당 안을 빙 둘러 살펴보았다. 그날 식당 손님들 중 우리가 가장 나이가 많은 테이블에 속한 듯했고, 식탁 위에  쌓인 술병의 숫자도 가장 많은 듯했다.


왜일까? 그 순간 갑자기 우리들의 목소리가 속삭임이었다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스쳐갔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에는 우리끼리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눈 적도 많았는데…”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만가만히 하는 이야기


'속삭임'의 의미이다.



 시절 우리에게  어울렸던  속삭임이 우리를 지금까지 수십 년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속삭임은 우리끼리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를 통해 우리들만의 작은 비밀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작은 비밀들은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어 주었다. 또한 속삭임은 작은 소리를 들으려 서로 고개를 모으다가 서로의 몸을 부딪히게도 했다. 그뿐인가, 귀에 대고 하는 속삭임은 간지러움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들곤 했다.



그렇게 속삭임은 그 시절 우리에게 익숙했다.


청춘 대화법인 속삭임은 나이가 하나씩 늘어감에 따라  빈도가 줄어갔다. 그리고 이제는 언제 우리가 속삭임으로 대화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다시 속삭임을 해야겠다.


나이 든 이들의 상징처럼 치부되는 큰 목소리 대신 속삭임으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너무 작아 귀에 들리지 않으면 소리를 조금 키운 속삭임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그런데 이건 알아야 한다.

나이 든 이가 하는 속삭임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주는 배려’라는 선물에 다름 아니.

그들이 하는 속삭임은 다른 이들의 불편을 피해 보려는 남다른 노력이다


속삭임과 너무 멀어진 사람은 배려와도 멀어져 있을 수 있다. 잘 살펴봐야겠다. 배려의 멋을 잃지 않도록 말이다.



이제부터는

속삭임과 더 많이 친해져 보려 한다.


그런데

그동안 미안,
속삭이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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