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일행 중 누군가의 전매특허(?)인 '친친주'라 불리는 소주, 맥주, 사이다를 융합한 폭탄주를 만들어, 연거푸 몇 잔씩 건배를 하였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으레 그렇듯이 수십 년 친구(?)들인 선후배들이 뭉쳤으니, 그날의 주제는 아련한 추억 테이프 되감기와 앞으로 함께 놀 궁리였다.
모두 흥에 겨워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손짓 발짓의 행동반경은 점점 커져만 갔다.
시쳇말로 유독 ‘기분이 업’된 한 선배의 목소리는 그 데시벨을 높게 끌어올렸다.
문득, 아차 싶었다.
“쉿!”
하고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데며 목소리를 낮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이미 행복바이러스에 지독하게 감염되어버린 그 선배는 신호를 보지 못했다. 어쩌면 보고도 모른 척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식당 안을 빙 둘러 살펴보았다. 그날 식당 손님들 중 우리가 가장 나이가 많은 테이블에 속한 듯했고, 식탁 위에 쌓인 술병의 숫자도 가장 많은 듯했다.
왜일까? 그 순간 갑자기 우리들의 목소리가 속삭임이었다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스쳐갔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때에는 우리끼리 속삭이듯 이야기를 나눈 적도 많았는데…”
나지막한 목소리로 가만가만히 하는 이야기
'속삭임'의 의미이다.
그시절우리에게잘어울렸던그속삭임이우리를 지금까지 수십 년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는지도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 속삭임은 우리끼리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를 통해 우리들만의 작은 비밀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작은 비밀들은 우리를 더 가깝게 만들어 주었다. 또한 속삭임은작은 소리를 들으려 서로 고개를 모으다가 서로의 몸을 부딪히게도 했다. 그뿐인가, 귀에 대고 하는 속삭임은 간지러움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