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쫄지않고 끝까지침착히 미안함없이 가는겁니다.
10년 전 상사와 미팅룸에서 2시간 동안 회의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대리였고 상대는 차장이었다. 고객과 미팅 결과에 대해서 상사에 보고하고 고객 요청 사항에 대응하기 위해 어떻게 할지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상사의 판단과 지시 사항을 확인하기 위한 미팅이었다. 고객과 미팅한 내용을 보고하고 상사는 이것저것을 물어보기 시작했고 고객과 확인한 내용을 바탕으로 상사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처음에는 차분한 분위기로 회의가 시작됐다.
회의 중간쯤 되면서 나는 고객의 입장과 회사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고객의 요청 사항을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까지 회사에서 응할지 개인의 의견을 말했다. 상사는 내 의견을 듣자마자 끝까지 듣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단정하고 어리석은 의견이라로 일축하며 자신의 의견이 정답이고 그 의견에 따를 것을 지시했다.
상사가 말한 의견에는 내 생각에 모순이 있었고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의 의견을 따르라고 하는 상사의 태도에 나는 무척 화가 났다. 그 자리에서 상사에게 그냥 "알겠습니다." 하고 물러설지 혹은 상사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야 할지 짧고 심각한 고민을 했다.
당시 상사는 자신의 의견에 대해서 부하가 반문을 하거나 반대 의견을 내면 이유 불문하고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고압적으로 변해 상대를 위협하고 찍어 내리는 사람이었다.
짧은 몇 초 동안 고민을 하면서 이렇게 물러서면 앞으로도 계속 물러서야 되고 나는 그 상사 앞에서 항상 양보하고 물러서는 존재로 낙인찍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직장 생활을 계속하면서 동료들과 싸움을 회피하려는 존재로 남아 있게 될까 하는 두려움에 이 번에는 절대 물러서서는 안된다는 결심을 했다.
나는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 상대와 싸움을 회피하고 항상 먼저 양보하는 식으로 스스로 물러나는 사람이었다. 상대의 의견이 납득이 가지 안아도 함부로 반문을 했다가 상대의 심기를 건드려 상대가 기분이 나빠져 나를 해코지하는 않을까 하는 쫄보의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나는 겁쟁이 쫄보였었다. 업무로 상대와 언쟁이 생기려고 할 때는 그 언쟁이 시작되려는 순간 내가 스스로 물러나기를 자처해 왔고 그것이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게 사는 직장 생활 처세의 법칙이라고도 생각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과 제대로 된 싸움을 해본 적도 없고 싸움이 시작되려 하면 내가 먼저 사과를 하고 물러나는 편이었다. 사춘기 때도 흔하디 흔한 부모님에 대한 반항도 없었다. 어떤 상황에 대해서 그냥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처세 방법이라고 생각을 해왔었다.
그런데 직장에 들어와 보니 주먹 다짐의 싸움은 없었지만 업무를 하기 위해서 동료들과 적잖은 싸움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싸움이 두려웠기 때문에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나는 항상 스스로 물러섰다.좋게 말하면 올바른 조정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회피였다. 싸움을 시작하려는 순간 스스로 물러나려는 나를 보고 상대들은 얼마나 많은 성취감을 얻고 나를 쉬운 상대라고 무시했을지 짐작이 간다.
제대로 된 싸움을 통해 맞아 본 적도 때려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싸움을 하면 맞아 터질까 두려워 싸움 조차 시도하지 않고 먼저 항복을 해 온 샘이다. 그러나 상사사의 태도에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당시에는 죽이 되는 밥이 되든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누군가 말했다. "항상 도망치는 사람에게 탈출구는 없다."
상대와 맞붙기 위해서 첫 번째로 침착해지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상사가 화를 내거나 동료가 화를 내면 스스로 당황하고 감정에 압도되어 생각에도 없는 말을 내뱉어서 오히려 상대로부터 더 당하곤 했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침착하면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듯이 싸움의 첫 번째 기술은 침착함이었다.
두 번째로 상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이었다. 싸움에서 승리를 좌우하는 것은 기싸움이다. 기싸움은 서로의 눈에서부터 시작한다. 상대의 위협적인 눈에 고개를 숙이는 것은 "나는 당신에게 졌어요."라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것은 상대에게 "나는 당신이 무섭지 않아요."라는 신호를 건네는 것이다.
세 번째로 태연한 표정으로 얼굴에 아주 살짝 웃음을 지었다. 상대의 공격에 주눅 들지 않고 매너 있게 상대의 공격에 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 상황에서 조차 여유가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네 번째로 반박의 논리를 천천히 느긋하게 생각하면서 정확하고 똑바른 발음으로 반격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빠르게 반격하고 빠르게 말해서 비논리적 이유를 대고 말실수를 하는 것보다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말하는 것이 효과적인 반격이었다.
다섯 번째로 말투의 매너는 지키되 상대가 언성을 높이면 나도 매너는 지키면서 목소리는 크게 했다. 상사 앞에서 큰소리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상사의 목소리 볼륨에 맞춰서 나도 목소리 볼륨을 맞추며 상대에게 나도 화가 나있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것이었다.
여섯 번째로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으며 상사의 지적에 대해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상사에게 반박하는 것이 버릇이 없는 행동이라고 지적을 하면서 나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내 잘못을 받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전 같았으며 상사와 언쟁은 해도 언쟁의 끝에서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인정을 하면서 상사의 체면을 세워주었지만 그것이 상대를 잘 못 길들여 왔음을 깨달았다.
일곱 번째로 싸움을 즐기려고 생각했다. 어차피 직장 생활은 항상 어려운 일들이 눈 앞에 닥치고 동료들과 갈등이 빈번히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과 혹은 어떤 사람들과 수시로 싸움을 해야 한다. 직장 생활에서 싸움과 도전을 두려워하면 직장 생활은 지속할 수없다. 나는 상사가 화를 내고 무시할 때 그것에 맞붙는 것을 즐기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여유롭게 상사의 공격을 받아치고 상사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우리는 한 바탕을 하고 다시 평상으로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서로를 대한다. 상사가 나때문에 언짢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집어 치워버렸다.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와 대립을 피하려고 한다면 성장할 수 없다. 사람 간 갈등이 생기고 그 갈등이 말로 표현되어 싸우면서 서로 상대의 자리매김을 한다. 싸움을 끝까지 가는 사람은 고수가 되고 미리 물러나는 사람은 하수가 된다. 상대와 싸우면 사이가 나빠질까 봐 혹은 그동안 좋았던 관계가 한순간에 무너질까 봐 두려워서 싸움을 회피하고 스스로 먼저 물러선다면 더 이상 상대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없게 되고 무시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우유부단하거나 착한 사람들이 회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항상 당하고 착취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싸움을 싫어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에 상대로부터 겁쟁이 취급을 받는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싸움에 응수한다면 상대는 그에 걸맞는 더 높은 수준의 싸움을 걸려고 할 것이고 것에 응수하기 위해 더 단련이 되며 맷집도 붙게 된다.
직장에서 싸움을 회피하는 것은 착한 것도 아니고 둥글둥글한 좋은 처세 방법도 아니다. 두려움에 쫄보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럴듯한 변명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