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면서부터 20대 후반에 취업을 하기 전까지 대전의 삼성동에서 살았다. 서울의 삼성동과 대전의 삼성동은 전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대전의 삼성동은 서울의 삼성동처럼 세련된 테헤란로에 구글, 포스코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거나 많은 인파가 붐비고 최신식 쇼핑몰이 있는 코엑스가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내가 살던 대전의 삼성 1동은 시간이 멈춰버린 동네다. 그래서 과거와 현재가 동일하다. 단지 40년 전과 비교해서 변한 것이 있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뿐이다. 어릴 적 같이 놀던 친구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길에서 마주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많이 변해버렸다.
부모님은 결혼 전에 기독교 신자였고 목사님의 소개로 중매결혼을 하고, 삼성동의 교회 근처에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 근처에 가까이 사는 것은 일종의 의무였다.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새벽 예배와 수요 예배, 금요 예배, 주일 예배를 참석해야 하는데 교회와 멀리 떨어져 있으면 참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배를 참석하는 횟수가 적어지면 교회의 어른들이나 목사님으로부터 신앙이 나약해지고 *세상에 빠져 있다는 책망을 듣는다. 그래서 세상에 빠져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진행하는 모든 예배애 참석을 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교회의 예배에 참석해서 시간을 드리는 행위를 하나님께 대한 충성스러운 헌신이라고도 부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빠져 있다는 것은 죄에 빠져 있다는 의미로써 기독교인들에게는 부끄러운 말이다.
어른들을 위한 새벽 예배는 매일 새벽 5시에 시작해서 아침 6시 전에 끝났고 어린이 새벽 예배는 매일 아침 6시에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는 어린이 새벽 예배가 없었는데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 어린이 새벽 예배가 신설되었다.
소수의 멤버로 개척 교회부터 시작한 그곳의 교회는 해마다 점 점 교인 수가 늘어나고 교인들의 가정에서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에는 교회 집사님들의 자녀들이 20명 이상이 되어 어린이들에게도 신앙을 훈련시켜주기 위해 어린이 새벽 예배를 신설했다.
부모님은 아침 새벽 예배를 다녀와서 나와 동생을 깨워 어린이 새벽 예배에 보냈다. 부모님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태어나는 자녀도 자동적으로 기독교인이 되고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예배는 반드시 참석해야만 했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죄이기 때문에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죄에 빠지는 것을 막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교회에 가지 않는 자녀들은 곧바로 부모님께 매로 다스려졌다.
잠을 더 자고 싶어서 새벽 예배를 가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리면 그때는 아버지의 억제되어 있는 무서운 모습이 나왔다. 아버지는 예배를 보는 시간과 장소에 있어서는 어떤 상황과도 타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우리들에게도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그래서 70 이 넘은 지금 까지 매일 새벽 예배를 나가시고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예배를 참석하기 위해 1박이 남는 여행을 평생 동안 가보신 적이 없다.
예배 시간은 항상 지루했다. "삼위일체, 화목 죄, 유월절,.." 등등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가 설교의 태반이었으며 설교의 주제는 항상 "하나님께 순종"이었다. 수 십 년 동안 항상 동일한 주제로 설교를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로서 목사님이나 선생님의 설교 내용은 어렵고 딱딱했다. 청소년이 되어서도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매번 설교 때마다 성가대 찬양이 끝나면 곧바로 졸기 시작하고 설교가 끝나면 자동적으로 눈이 깼다. 지금도 어른이 돼서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자리에 가많이 앉아서 듣기만 하는 설교 시간은 항상 졸리다.
주일날 아침 어린이 예배 시간(=주일학교)이 되면 A4용지를 반으로 접은 종이 크기의 프린트를 어린이들에게 나눠주었다. 그 프린트 물을 공과 지라고도 불렀고 공과지에는 성경의 교리가 3~4개 정도 적혀 있었고 선생님들은 각 반의 아이들에게 15분 정도 교리를 설명해 주셨다.
교리 내용 중에 "간음하지 말라"라는 10계 명의 교리가 적힌 것을 보고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뉴스를 통해서 "성폭행"이라는 단어도 많이 들었었지만 "성폭행"의 의미도 제대로 이해를 못했던 시기였다. 선생님은 "간음하지 말라"라는 것에 대해서 "여자를 좋아하지 말라"고만 설명해주시고 다음 교리의 설명으로 넘어가 버렸다.
"간음"이라는 단어가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순간 선생님의 표정은 약간 당황스러웠었다. 순간 나는 "간음"이라는 단어가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설명하기에 곤혹스러울 수 있다는 단어라는 것을 눈치챘다. 어린 자녀가 부모에게 "섹스"가 뭐냐고 물어볼 때의 그런 느낌처럼. 만약 내 아이가 "간음"이란 단어의 뜻을 물어본다면 어른인 나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을 할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교회의 모든 예배에 의무적으로 참석했고 그리고 예배에 빠지는 게 죄라고 여겨왔던 나는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일요일마다 자율 학습을 빠져야 하고 수요일 금요일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자율 학습에 참여하지 않고 교회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같은 반의 친구들도 나에게 불만이 있었다.
왜 제만 자율 학습에서 제외가 되냐며.
성인이 돼서 일본에 유학을 할 때 한 번은 일요일 예배애 빠진 적이 있었다. 일요일 아침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너무 피곤해서 일요일 아침부터 오후 내내 잠이 들어서 교회의 예배를 참석하지 못했었다. 그때 나는 양심의 가책이 들어서 큰 죄를 지은 것인 양 불안해하며 시간을 보냈었다.
만약 부모님이 알았다면 당장 일본에서 귀국하라는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