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작년 8월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어, 초등학교 2 학년인 첫 째 아이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을 위해 목숨도 버릴 정도로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아이랑 같이 있을 시간을 상상하니,
한숨이 깊게 나왔다.
결혼 이후로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는 터라 첫 째 아이는 초등학교 1 학년 때부터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1 km 떨어진 학교까지 등하교를 하고 집에 와서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혼자 등하교 시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차들이 다니지 않는 루트의 등교길을 아이에게 알려주었고 일주일간 아이와 함께 등하교를 하면서 안전 훈련을 시키기도 했지만 아이가 혼자서 등하교를 하는 것은 찜찜했고 방과 후 집에서 아이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안전사고는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어린아이가 혼자서 심심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안쓰러웠다.
아이가 집에서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는 2g 핸드폰을 가지고 노는 시간이 많았다. 게임, 인터넷, 영상 시청이 불가능한 2g 핸드폰으로 뭘 하고 놀지 궁금했는데, 사진을 찍거나 유튜브 영상을 녹화해서 저장한 후 반복해서 보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하는 것 보다야 안심은 됐지만 그래도 핸드폰만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은 못마땅했다.
또는 컴퓨터 비밀 번호를 용케 알아내어 태권도를 갈 때까지 3 시간 이상 게임에 몰입하기도 했다.
(집에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룰을 정했기 때문에 아이는 게임을 하면 어김없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솔직하게 털어놓긴 했지만)
아이는 집에서 혼자 있으면 심심함을 핸드폰이나 게임으로 풀려고 했고 암묵적으로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재택근무를 하고 나서부터는 아이와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아이를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었고 무분별하게 컴퓨터나 핸드폰을 하지 않도록 옆에서 지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맞벌이인 우리 부부는 본의 아니게 코로나로 인한 수혜자가 되었다.(물론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고 그분들 중에는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도 포함되어 있어서 하루속히 코로나가 끝났으면 하는 바람은 간절하다.)
아이는 대안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일반 공립학교처럼 방과 후 수업을 하지 않고 학교에서 점심을 먹자마자 오후 2시경 집으로 돌아왔고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가지 않을 때는 줌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수업을 하고 오후 2시부터는 나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오후 5시경에 태권도를 가서 오후 6시에 돌아왔다.
다행히 대안 학교의 줌 수업은 선생님과 4~5명의 소수의 학생이 쌍방향 수업을 하기 때문에 아이는 선생님과 친구들과 즐겁게 수업에 참석했고 나는 아이의 방해를 받지 않고 일에 집중해서 할 수 있었다.
오후 2시가 되어 수업이 끝나면 아이는 30분 간 게임을 하고 이후에 숙제를 하고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하면서 태권도를 가는 오후 5시까지 3시간 동안 혼자서 시간을 그런대로 잘 보냈다.
그런데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면서 고민거리가 생겨났다.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면서 아이의 기상 시간부터 긴 시간 동안 아이의 무료함을 어떻게 달래줄지 고민이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심심하다고 할 때만큼 무서운 말은 없다.
결혼 전에는 주말에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직장 선배들을 보면, 뭐가 어렵냐고 하며, 아이와 그냥 놀아주면 되지 않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지만 막상 아이를 길러보니 아이와 놀아주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깜짝 놀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이가 스스로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동안 책 꽃이에만 꽂혀져 있던 책들을 펴서 보기도 하고 장시간 방치되어 있었던 건 장난감 레고 블록을 모아서 캐릭터를 만들고 색종이 만들기 유튜브를 보며 색종이로 비행기를 만들고 비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물론 아이가 게임이나 미디어를 아예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 동안만 이틀에 20분, 영상은 하루에 60분만 시청한다. 미디어를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아이의 욕구불만을 초래할 수 있고 또래들과 어울리는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 정도의 미디어 노출은 허용하고 있다.
방학 동안 긴 시간의 심심함을 해소하기 위해 핸드폰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게임을 하게 해달라고 졸라대면 어떨지 걱정했었는데 이런 걱정이 해소된 것이다. 아이기 미디어에 덜 의지하면서 혼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에게 원인을 설명해주고 아이의 동의를 얻는 협의의 과정을 통해서 아이와 미디어 절제하기를 타협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생각이 있고 어떤 것이 합리적인 것인 줄 알기 때문에 합리적 이유를 설명해주면 따라준다.
그래서 미디어를 하면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설명해주고 아이의 동의를 얻은 후 화이트보드에 미디어를 하는 시간을 적어 놓고 지키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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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공인된 자료를 설명
게임이나 동영상을 오래 시청하면 어린아이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뇌의 활동이 둔화되고, 게임이나 미디어에 중독이 되어버릴 수 있어. 아빠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나 다른 자료에 나와 있어. 뉴스를 한 번 보여줄게, 봐봐. 내 말이 맞지?
아이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인식을 시켜주면서 아이를 설득.
그런데 너도 게임을 안 하면 너무 심심하니 아빠가 대신에 하루에 20분이나 이틀에 30분 동안만 게임이나 영상을 허용할게. 어떤 친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하는 친구들도 있고 아예 안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하더라. 그 애들에 비하면 너는 많이 하는 편이야. 하지만 네가 게임을 워낙 좋아하니 그런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많이 해주는 거야. 대신에 나중에 시간을 다시 조절하도록 하자.
아이의 의견 듣기
혹시 아빠한테 요구하고 싶은 거 있어? 이유와 함께 이야기해줘. 합당한 것이라면 아빠가 생각해 볼게.
서로 간 합의하고 공식화 하기
그러면 우리 이렇게 약속한 거 지켜야 하니까, 저기 화이트보드에 써놓고 잘 지키는 거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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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하면 잊어버리지만 집안 눈에 띄는 곳에 서로 합의한 내용을 적어 놓으면 어른이나 아이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룰을 정했기 때문에 아이도 책임감을 가지고 룰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잦은 미디어 이용이 아이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모다. 그래서 아이와 타협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된 것이고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미디어 이용이 잦아서 걱정하는 부모라면 아이와 타협하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적용한 방법이 옳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정도 적용해 볼만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