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 저녁 애들한테 뭐 해주지? 그리고 우리는 뭐 먹지? “
“토요일 점심, 저녁은 뭐 먹지? 그리고 일요일 점심, 저녁은 뭘 먹지? “
맞벌이를 하는 아내와 나는 각자 퇴근하고 회사를 나오면서 오늘 저녁 식사 거리를 고민한다. 어른들이야 아무거나 먹으면 되지만 아이들은 성장기의 나이라 영양을 고루 섭취하면서도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아이들 입 맛에 맞는 음식을 차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생이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바쁜 아침 시간에는 출근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긴 시간을 아이의 아침 식사를 위해 헌신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빵이나 미숫가루에 우유를 타 주거나 김에 멸치와 참치를 섞어서 만든 주먹밥으로 간단한 아침 요기 거리를 준비해 준다. 점심은 그나마 다행인 것이 첫 째는 초등학생이고 둘 째는 어린이 집에 다녀서 학교와 어린이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해결한다.
그러나 저녁은 아침처럼 간단한 음식만으로 준비할 수 없고, 점심처럼 학교나 어린이 집에서 해결해 주지 않기 때문에 우리 부부의 손이 필요하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아이들 입맛에 맞으면서 영양도 고루 갖출 수 있는 식단을 생각해야 하고, 식사 후 아이들 목욕, 숙제도 봐줘야 하고 아내와 나도 쉬어야 하므로 식사를 준비하는데 에너지와 시간이 적게 소모되는 메뉴를 고려해야 한다.
주말이 되면 식사 준비의 부담은 더 커진다.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 동안 총 여섯 끼를 겹치지 않는 메뉴로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각 종 재료들을 사서 다양한 찬들을 준비해줄 만한 요리 실력도 없거니와 음식 준비로 인해 주말까지 체력 소모전을 가져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40대 부부에게 주말은 쉼의 시간이 되어야 하고 소진된 체력을 보충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맞벌이 부부의 특성상 다양한 끼니를 준비하면서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한다.
보기 좋게 코스프레하는 셀럽 부부들처럼 말끔하고 넓은 주방에 신선한 각종 재료를 정리해 놓고 행복하게 웃으면서 정성스럽게 요리를 준비할 여유가 없다.
아내와 나는 그나마 직장의 혜택을 보는 사람인데 평일 오후 5시 30분이 되면 퇴근을 한다. 퇴근을 하면서 서로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하는데 가장 먼저 이야기의 소재로 나오는 것이 집에 돌아가서 먹을 저녁 메뉴에 대한 이야기다.
나: 여보 오늘 저녁은 뭐야?
아내: 퇴근하는 길에 회사 주변에서 반찬 사서 갈 거니까 그거 먹자.
나: 오늘은 첫 째가 치킨을 시켜먹고 싶다고 하는데,
아내: 그래 오늘 너무 피곤해, 치킨 시켜서 먹자.
나: 지난 주도 첫 째가 치킨 먹고 싶다고 해서 치킨 시켜 먹었는데,
이 번 주도 치킨 먹는 게 괜찮을까? 별로 좋지 않은 거 같은데,
기름에 튀겨서 트랜스 지방도 많이 들어 있고, 치킨은 2주일에 한 번만 먹기로 했잖아,
그러니까 이 번 주 치킨 먹는 것은 스킵하자.
아내: 그래, 그럼 오늘은 치킨 먹지 말고, 비도 부슬부슬 오니까,
우리는 부침개나 먹고 아이들은 인터넷 쇼핑에서 산 갈비탕 데워서 주자,
서로가 퇴근을 할 때 즈음에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 저녁거리를 정하다 보니 같은 주에 똑같은 음식을 두 번 이상 먹을 때도 있었고 아이들 취향에 맞지 않는 음식을 준비해서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일 때도 있었다. 애써 준비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릴 때면 아이들에게 화가 나고 걱정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이 밥을 잘 먹지 않으면 성장에 문제가 생기고 면역력도 약해져서 병에 쉽게 걸릴 텐데.”
어느 선배 부모는 아이들이 부모가 차려준 음식을 먹이 않을 때는 그냥 내버려 두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자연히 배가 고파져서 아무거나 잘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와 아내는 이런 대응 법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이 차려준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며칠간 그냥 내버려 둔 적이 있었는데 밤 9시가 넘으면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하면서, 간식을 먹거나 밥을 달라고 생 때를 쓰기 시작했다.
나: 네가 아까 저녁 안 먹는다고 했잖아, 그래서 엄마 아빠는 밥 다 먹고 음식 다 치웠어,
아이: 아까는 아까고, 지금은 너무 배가 고파, 그러니까 밥 줘.
나: 이미 너랑 아까 약속했잖아, 저녁 안 먹으면 배고파도 밥 안 준다고,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자,
엄마 아빠도 지금 밥 준비하려면 내일 출근도 해야 해서 피곤해.
아이: 엄마 아빠는 왜 아이들을 굶겨?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하면 밥 줘야 하는 거 아니야?
아이는 밥을 차려줄 때까지 끈질기게 나와 아내를 들볶기 시작했다. 아이의 생 때에 나와 아내는 결국 손을 들어 버렸고 밤 9: 30 즘이 되어서야 부랴 부랴 달걀 프라이를 만들고 밥에 김 가루를 비벼서 아이에게 차려주었다.
매일매일 아내와 고민 끝에 식사를 준비하고, 그러나 결국에는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상황이 반복되자 침착하게 해결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에게도 좋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두 진영이 Win Win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회사에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항상 반성회(PDCA)를 해왔다. 지금까지 내가 다니던 회사들은 일본계 회사들이라 일본계 회사들의 특징이 반성회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어떤 프로젝트를 맡거나 업무를 진행할 때면 이런 반성회를 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가사나 아이들 키우는 일에 있어서는 반성회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PDCA: Plan -> Do -> Check -> Action
“왜 메일 매일 조급해하면서 식사 준비를 하고 정작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걸까?”
결국 아내와 나는 이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째, 일주일 간의 식사 메뉴는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짠다.
둘째, 식사 메뉴를 짜고 아이들의 합의를 얻은 후 화이트보드에 요일 별 메뉴를 기입한다.
세 씨. 아이들과 합의한 식사 메뉴는 서로 약속으로 하여 불만을 갖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식사를 강요하면서 아이들과 싸우며 멘탈이 붕괴되고 진이 빠지면서 아내와 나는 일주일 전의 식단을 미리 정하기로 했다. 주방의 벽에 걸어둔 1m*1m 크기의 화이트보드에 “월~일요일”까지 요일 별로 메뉴를 기입하고 첫 째 아이의 의사를 물어본 후, 첫 째 아이가 먹고 싶은 음식 위주로 메뉴를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아이와 우리 부부는 서로 합의한 메뉴에 대해서 화이트보드에 써놓고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화이트보드의 내용]----------------------------------------------------
*월요일: 저녁 엄마가 반찬으로 사 온 음식 먹기
*화요일: 저녁 달걀말이
*수요일: 저녁 교촌 치킨 배달
*목요일: 저녁 콩나물, 김, 멸치, 간장 비빔밥
*금요일: 저녁 참치 전, 멸치
*토요일: 점심은 잔치 국수 & 저녁은 소고기 외식
*일요일: 점심은 카레라이스 & 저녁은 돈가스
아무도 위의 메뉴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지 않기로 하며, 엄마 아빠 아이가 약속함.
약속한 날짜 2020. 8. 12 오후 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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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저녁에 즉흥적으로 음식을 준비하면서 아이의 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 있을 경우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많았지만 이런 식으로 아이와 미리 합의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나서부터는 아이와 식사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는 일이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주말에 대한 기대감도 갖게 되었다. 주말이 되면 아이와 나는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로 외식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주말이 가까이 올수록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기대감으로 주말을 기대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즉흥적으로 메뉴를 정하다 보면 계획에 없던 식단을 준비하느라 시간도 걸리고 재료를 구입하느라 비용도 발생했지만 미리 식단을 정하다 보니 음식 준비 시간과 음식 준비 비용이 확실하게 줄어들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기 전에는 “음식 준비가 뭐 대수냐?”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아이가 자라니 음식 준비도 일이 되고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가정을 이루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일들은 모두 처음 경험이지만 다 나름대로의 해결책이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