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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문 Apr 10. 2023

빗물과 눈물을 뚫고 구한 나의 작은 방_1

거실에다가 커튼을 쳐놓고 '방'이라고?

항상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해 보는 성격을 가졌다. 단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철저히 준비해 갈 수 있기에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워킹 홀리데이 최종합격 후 약 6개월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나는 캐나다 정착 생활을 시작하려 했다. 그리고 정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는 의, 식, 주. '의'와 '식'이야 미리 챙겨가는 것도 있고 돈만 있다면 편하게 구매할 수 있는 거라지만 '주'는 달랐다. 돈이 있어도 어느 집에 언제 어떻게 들어갈지 쉽게 알 수 없다.




워킹 홀리데이 초반 정착 생활을 위해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 방법을 택하는 것 같다. 아예 한국에서부터 인터넷으로 워홀 생활 내내 살 집을 결정하거나, 한두 달 정도로 임시 숙소를 예약하고 그 나라에 도착해서 천천히 오래 살 집을 구해 보거나, 아니면 임시 숙소는 말 그대로 임시니까 호텔 등으로 짧게만 예약하고 바로 발품을 뛰러 나가는 경우다. 첫 번째 방법은 눈으로 직접 보지 않는 한 그 집과 집 주변의 상태를 확신할 수 없어 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고작 몇 개월 간의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는 부족 택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세 번째. 6일간의 임시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잡고 그 6일간 직접 발품을 팔아 장기 숙소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어비앤비만 달랑 예약하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건 또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이 컸기 때문에 첫 번째 방법인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인터넷으로 매물 찾아 보기'를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터넷 캐나다 한인 카페에 들어갔다. 역시나 나같이 돈 없는 학생들을 위한 룸렌트 또는 하우스셰어 매물들이 여럿 올라와 있었다. 3일 정도를 계속 둘러보며 어떤 들이 는지 계속 확인다. 그런데 아쉽게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곳은 별로 없었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처럼 아예 나 혼자 독립적으로 사용하는 공간도 아니고, 여러 사람과 주방, 화장실을 공유하며 방 하나만 오로지 나에 주어지는 건데 한 달 방세가 1000불이 넘어가는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인들이 찾는 인터넷 카페라 그런지 한인들이 모여사는 동네의 매물이 거의 다였다. 아무래도 외국에 나가는 거다 보니 영어 실력 조금이라도 키우고 싶은 마음 있서, 적어도 한인들 사이에 끼어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무 집도 구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야 했기에 나는 최종적으로 3군데 정도 미리 스크랩한 뒤 출국하였다.



14시간의 비행이 너무 고됐다. 엉덩이가 부서질 것 같은 그 괴로움, 7시간이나 더 앉아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그 절망감. 지하철에서도 쉽사리 잠들지 못하는 민한 나는 비행기 타도 마찬가지였다. 겨우겨우 조금이나마 눈을 붙이고 뜨면 마치 밤샘 MT 이틀차 아침처럼 숙취 비슷한 느낌을 느끼며 비몽사몽 깨어났다. 시작부터 컨디션이 바닥을 찍었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는 짐을 찾았는데, 내 양손으로 들기엔 짐이 어찌나도 많던지. 한국에서는 가족의 도움을 빌려 나름 무겁지 않게 들고 다녔는데, 나 빼고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는 이 무거운 짐들을 오롯이 내 손으로 들고 다녀야 했다. 이게 '혼자'의 무게일까. 50KG에 달하는 짐을 낑낑대며 옮기며 영어와 프랑스어로만 된 표지판을 따라 입국 수속을 밟았다. 나의 입국을 결정해 줄 사람은 어떤 백인의 덩치 큰 아저씨. 준비한 서류들을 차례로 냈는데 어찌나 꼼꼼하게 보던지 괜히 떨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빠진 서류가 있을까 봐, 날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낼까 봐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다행히 오케이, Welcome to Canada.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작부터 거의 모든 기력을 소진해서 서둘러 임시 숙소로 가야만 했다. 공항에서 우버를 불러 에어비앤비 숙소로 향했다. 우버 창문으로 바라본 바깥 풍경은 꽤나 생소했지만, 그런 감상에 젖을 만큼의 체력도 없었기에 조용히 눈을 감았고, 곧이어 임시 숙소에 도착했다. 친절한 우버 아저씨는 나의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주고 떠났다. 내가 도착한 곳은 어떤 오래된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는 옛날 외국 영화에서나 볼 법한 아주 고 작은 것이었다. 욕실 바닥 같은 하얗고 누런 타일에 나무판자 같은 걸로 되어 있는 벽. 창문이나 거었다. 8이 쓰여 있는 동그랗고 까만 버튼을 딸깍, 그리고 Close Door 버튼을 딸깍. 문이 스르륵 닫히고 위쪽의 동그란 조명들이 L에서 8까지 차례로 반짝였다. 우우웅, 위이잉. 큰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엘리베이터가 나의 짐과 내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조금 무서웠기에 15층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내렸다.



마침내 임시 숙소에 도착했다.



···만, 내가 생각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분명 사진으로 봤을 땐 방이었는데, 분명 리뷰도 거의 만점에 가까웠는데. 어째서 집주인이 이끌어주는 곳이 나의 방이 아니라 거실이란 말인가? 짐이 많고 여권과 현금뭉치, 각종 중요한 서류들 많았기에 당연히 문을 잠글 수 있는 '방'을 예약했다. 아니, 그런 줄 알았다. 그때 예전에 워킹 홀리데이 카페에서 봤던 여러 글이 떠올랐다. '돈이 없어서 거실에 커튼을 쳐놓고 방처럼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방세가 싸다.' 그렇다. 이런 식으로 거실을 방처럼 만들어 파 셰어도 있었던 것이다. 이 곳인 줄 알았으면 예약하지 않았을 텐데.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난 5일이나 예약해 버렸고, 피곤에 절어 바로 눕고 싶었고, 사실 이미 도착까지 해버렸고. 선택지가 없었다. 방문을 잠글 수 없다면 캐리어라도 꼭꼭 잠가야지 어쩌겠는가. 에어비앤비에 방 사진을 거실이 아닌 진짜 방처럼 올려 날 속인듯한 집주인에게는 일단 반갑고 고맙단 소리밖에 하지 못했다. 집주인도 반갑다고 인사했고 딸과 함께 그들은 진짜 '방'으로 들어갔다. 흠 그래,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온 내 잘못이지. 조금은 억울했지만 어쩌겠는가. 일단은 눕자, 누워.


'숙소 잘 도착했어요~'


한국과 밤낮이 달랐기에 전화는 하지 않고 가족 단체방에 메신저 남겼다. 내일부터는 교통카드를 사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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