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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문 Apr 20. 2023

빗물과 눈물을 뚫고 구한 나의 작은 방_2

캐나다 4일 차, 벌써 한국에 가고 싶다.

시차 적응을 아직 다 하지 못했다. 날씨가 계속 흐려 햇빛을 못 봐서 그런아침에 일어나기가 더욱 힘들었다. 2일 차, 조금 늦게 일어나긴 했지만 누구보다 바삐 움직였다. 오전에는 근로계약서에 기재해야 하는 사회보장번호 'SIN Number'를 만들고, 한인 텔러를 만나 캐나다 은행 계좌를 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미리 스크랩해뒀던 룸셰어 3곳의 집주인에게 연락해 오후에 방을 보러 간다고 했다. 방을 보기로 한 시간대는 3시, 7시 반, 8시 반. 점심은 친숙한 맥도날드에서 대충 먹고, 3시까지 시간이 좀 남아 캐나다의 대표 카페라는 '팀홀튼'에서 시간을 좀 때우기로 했다. 비가 올 듯 말듯하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탓에 추웠던 나는 몸을 녹이려 따뜻한 음료를 시키려다가, 대표 메뉴인 '아이스캡'이 궁금해 그걸 주문했다. 차가운 커피 셰이크가 나왔다. 한입 쭉, 그런데 우웩, 너무 달아서 맛이 없었다. 그래도 모든 게 비싼 캐나다니까 몇 입 더 먹어줬다. 한인들이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내 앞 테이블에는 한국인 가족이 앉아 있었다. 한국어로 질문은 하는 부모에게 영어로 대답하는 어린 남자아이. 그래, 너는 여기서 크고 자라 나처럼 이 추운 날 방 하나 구해보겠다고 바쁘게 움직이는 일은 없겠구나.



3시가 거의 다 되어 첫 번째 방을 보러 아주 조용한 주택가로 향했다. 내가 갈 집은 팀홀튼에서 걸어서 약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큰길에서 으로 꺾어 단독주택이 쭉 늘어진 작은 길로 굽이굽이 들어가야 했다. 집들은 너무 붙어 있지도 않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은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길 위에 나밖에 없어서 그런 왠지 모를 소름이 들었다. 여기가 맞나? 메신저에 찍힌 주소와 집에 쓰여 있는 주소를 번갈아 보며 확인한 뒤 집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곧이어 집에서 어떤 젊은 한국인 자가 나왔다.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자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는데 거실에 TV를 보는 어떤 아저씨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조그맣게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방 보러 오는 사람이 익숙한 듯 내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조금 머쓱해진 채 자를 따라 이동했다. 그런데… 지하로 간다? 분명 1층 방이랬는데? 계단을 조금 내려가 문을 여니 방 하나가 나왔다. 자는 이곳이 게시글을 올린 그 룸셰어 방이라고 했다. 상태가 나쁘진 않았지만, 창문이 벽의 위쪽에 나있어 반지하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층이 맞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왠지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마음이 벌써 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조용했던 스산한 동네에 한 번, 계단을 내려간 순간 두 번, 위쪽에 나있는 창문을 본 순간 세 번. 마음이 뜰만했다. 자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바로 계약을 할 것이냐 물었지만, 나는 이곳이 처음 방문한 곳이고 다른 방도 더 보러 다닌 후에 결정하고 싶다고 하며 거절했다. 계단을 다시 올라와 집을 나올 때 여기는 다시 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집을 나오니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다. 우산도 없는 데다가 옷을 얇게 입고 있어서 추웠다. 가까운 실내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우다가 7시 반에 맞춰 두 번째 집을 보러 갔다. 두 번째 집은 역세권이 아니었다. 가장 북쪽에 위치한 지하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더 북쪽으로 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니 양쪽으로 집이 쭉 늘어서 있는 큰 길이 나왔다. 이번에 갈 곳도 첫 번째 집과 같이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집이었다. 다 도착해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니 주차를 하고 있던 아저씨가 차창을 내리고 나에게 인사를 했다. 말이 많고 유쾌한 아저씨였다. 내와 고등학생 아들이 함께 살고 있는 조용하고 단란한 가정집이라는 말을 했다. 집에 들어가니 집주인 아줌마도 날 반겨주었다. 아저씨가 내가 지낼 방의 문을 열어 주었다. 방은 생각보다 작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 방을 꽤나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 놓아서 봐줄만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진짜 1층에 있는 방이어서 아까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월세가 너무 비쌌다. 한 달에 800불을 내야 했다. 역세권이 아닌데 800불씩이나 내야 하다니. 방 컨디션과 집주인 부부는 나쁘지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갈 집이 남아 있는 만큼 쉽사리 계약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저씨는 지금 계약하지 않으면 바로 다른 사람에게 팔릴 방이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최악을 항상 생각하는 성격이며, 이 방에서 살면서 벌어질 최악의 통근을 이미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에게는 죄송하다고 하며 두 번째 집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세 번째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다행히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이 시간대의 버스는 생각보다 한산했지만, 기사님은 생각보다 더 거칠게 버스를 몰았다. 저녁밥을 먹지 않은 빈 속인데도 울렁거림을 느꼈다. 8시 반, 드디어 마지막 집이다. 비도 맞고 배고프고 피곤해서 거지꼴이 된 채로 한국인 집주인 아저씨와 만났다. 아저씨를 따라 들어간 마지막 집은 겉으로 보기에도 정말로 비싸 보였고 안으로 보기에도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조금 긴 복도를 지나 따뜻하고 포근한 카펫을 밟으며 방문을 열었다. 적당한 크기의 방에 역시나 깔끔한 방 컨디션.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지금까지 본 곳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힘들어서 빨리 끝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이미 '계약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저씨도 좋다고 했다. 아저씨 동네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주었다. 근처에 비싸긴 해도 한인마트가 있고, 나름 사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 하고 괜찮다고 했다. 지하철역과도 가까웠다. 운명인가? 이곳이 내가 곳인가 보다. 이틀차만에 이렇게나 완벽한 장기숙소를 구하다니, 나이스!


당장은 계약금이 없었기에 아저씨에게 입주하는 달치 방값을 현금으로 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현금을 드린 것에 대한 영수증을 써달라고 했다.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 카페에서 배우기로는, 룸셰어를 때에도 영수증을 꼬박꼬박 챙겨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가 이곳에 사는 사람이라는 증명할 일이 언젠가는 있을지도 모르고, 그 큰 현금을 거주를 위해 썼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영수증을 연히 요구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아저씨는 난처한 태도를 보였다. 영수증을 써줄 없다는 것이다. 왜인지 물어보니, 룸렌트를 처음 해봐영수증을 쓰는 법을 모른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내가 돈에 대한 증명이 필요한 같다며 계속해서 간이로라도 좋으니 영수증을 써달라 요구했다. 아저씨는 고민을 하더니 이내 알겠다고 했다. 휴, 그럼 이제 완벽하다. 아저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나는 에어비앤비 숙소로 돌아왔다.



3일 차는 너무 피곤했던 나머지 아주 늦게 일어났다. 간단히 생필품 장만 보고 한국에서 싸 온 컵밥과 컵라면을 먹으며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4일 차가 된 날, 집주인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계약을 못 하겠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인지 이유를 물었다. 역시나 영수증 때문이었다. 쓰는 법을 몰라 못 써주겠단 것이었고, 영수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니 굳이 필요 없지 않냐는 것이었다. 답답했다. 설명하고 싶었지만 사실 나도 룸렌트 영수증에 대해 잘 몰라서 더 답답했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사실 왜 필요한 건지도, 어떻게 쓰는 건지도 잘 모른다. 그래도 두 달치 방값인 현금뭉치를 턱 하니 내놓는 건데 아무런 증명도 없다니, 그건 내게 너무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영수증대해 부정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 집주인의 마음을 돌리는 쉽지 않았다. 계약이나 영수증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최악을 생각하는 성격의 나는 이미 상상해버리고 말았다. 돈을 줬는데도 방을 얻지 못하고, 내가 돈을 냈다는 아무런 증거를 내세울 수 없는 그런 상황을. 나는 계약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어찌 보면 참 어리석은 집착 같기도 하다. 하지만 타지에 막 도착한 내가 기댈 것은 내가 아는 몇 없는 정보들뿐이었다. '룸렌트 영수증은 꼭 잘 챙겨둬야 해요.' 나는 이 믿음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렇게 집 구하기에 실패한 나는 캐나다에 도착한 지 4일만에 좌절감을 느꼈다. 에어비앤비 숙소는 5박 6일 치만 예약했던 터라 장기숙소를 구하는 데에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오늘과 내일 이틀뿐이었다. 모레가 되면 체크아웃 시간인 오전 10시에 한국에서 가져온 짐들과 새로 산 생필품 짐까지 모두 빼야 했기 때문이다. 이 현실이 묵직하게 내 마음을 짓눌러 눈물이 나왔다. 이제는 커튼 친 거실 방에서까지 내쫓겨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건가? '집'에 가고 싶었다. 캐나다에서 새로 구할 집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진짜 '내 집'에. 에어비앤비 숙박 연장을 요청해 보거나, 연장이 안 되면 다른 에어비앤비 숙소를 구하면 될 노릇이었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저 부정적인 생각에 부정적인 생각이 덧씌워질 뿐이었다. 지구 반대편 타국에 혼자 있으면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감정 제어가 더 잘 안 되는 것인가 보다. 살면서 제일 서럽고 오래 울었다. 바보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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