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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브문 Apr 27. 2023

빗물과 눈물을 뚫고 구한 나의 작은 방_3

울고 있는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였다.

집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이틀이었지만, 하루는 거의 우는 데에다가 썼다. 하지만 울기만 한다고 집이 뚝딱 구해지지는 않는 법. 오늘은 발품을 팔지 말고 인터넷으로라도 다시 찾아보자 싶어 기운을 차렸다. 인터넷 한인 카페에 들어갔다. 스크롤을 슥슥 내리며 룸렌트 글을 여러 개 읽어 보았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방은 없었다. 급급한 와중에도 신중을 가하는 내가 웃겼다. 그래도 '여자 혼자 살기에도 괜찮은 동네의 지상에 위치한 월세 700불 이하의 당장 입주 가능한 방'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돈도 깡도 없었기에 아무 곳이나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인 카페를 아무리 둘러봐도 괜찮은 매물이 없길래, Kijiji라는 사이트에 들어갔다. Kijiji는 현지인들이 룸렌트나 아르바이트 구인 등 올릴 때 사용하는 사이트다. 당연히 전부 영어로 되어 있어 눈에 잘 안 들어왔지만, 그래도 별 수 없 룸렌트 글들을 둘러보았다. 여긴 너무 외곽이고, 여긴 사진이 없고, 여긴 무슨 월세가 2000불이야 미친 건가? 잠시 검색을 멈추고 다시 누웠다.



눈을 감고 잠들락 말락 하는데, 에어비앤비 집주인이 날 불렀다. 울어서 눈도 퉁퉁 부었는데 그냥 자는 척을 할까. 하지만 집주인은 계속해서 내 이름을 불렀다. 어쩔 수 없이 Yes?라고 하며 방금 막 일어난 척 비척이며 침대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너무 비틀거리는 척을 나. 나오다가 콱! 정강이를 침대 모서리에 세게 부딪쳐버렸다. 악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집주인이 심각한 목소리로 얘기를 하길래 비명을 속으로 삼켰다. 집주인은 내가 어젯밤에 샤워할 때 물을 너무 튀겨 욕실이 난장판이 됐다며 조심 좀 해달라고 했다. 나 샤워 점잖게 한 거 같은데··· 아니었나? 반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정강이가 너무 아파 일단 Yes, yes.라고 말하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 하 참, 되는 일이 없네.



정강이를 부딪쳐 정신도 좀 차려졌겠다, 다시 Kijiji 사이트를 들여다보았다. 페이지를 얼마나 넘겼을까, 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인이나 일본인 여성만, 6월 1일부터 입주 가능. $750.00' 내가 생각한 거보다 조금 더 비싼 집이었지만 Korean을 우대한다니, 바로 클릭했다. 내용은 짧고 굵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 여성만 받습니다. 지하철역 5분 거리. 깨끗하고 큰 방이며, 화장실 2개와 주방을 다른 사람 3명과 함께 씁니다. 모든 유틸리티와 와이파이 포함입니다.' 사진도 세 장 포함돼 있었다. 2명까지도 누울 수 있을 것 같이 큰 침대 사진 한 장, 조그만 책상과 의자 사진 한 장, 전신거울 붙박이장 사진 한 장. 위치는 다운타운 쪽이었다. 조건이 좋았다. 바로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집주인은 장기 룸렌트를 하는 사람을 구하고 싶다고 하며, 직접 와서 보라고 하였다. 나 또한 한두 달 살고 나갈 건 아니었기에 알겠다고 했다. 집주인은 주소를 찍어주었고, 다음 날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나를 겨우 구하고 나니 더 이상 사이트를 둘러볼 기력이 없었다. 그래, 여기 안 되면 단기숙소 또 구해서 더 머물면서 구해보지 뭐.


아참, 영수증을 깜빡할 뻔했다. 그놈의 영수증, 이번 집주인도 안 써준다고 하면 큰일이지. 바로 문자로 물어봤다.


'혹시 내가 그 방이 마음에 들어서 살고 싶어지면, 계약서나 영수증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대답은···



'영수증 줄게. 어렵지 않지.'


드디어! 그래, 이래야지.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이 집에 아직 가보지도 않았지만 여기에 곧 살게 될 것만 같았다.



다음 날, 무너진 나의 몰골을 최대한 괜찮게 꾸민 뒤 집을 찾아갔다. 지하철을 타고 다운타운 쪽으로 이동했다. 다운타운이라니, 뭔가 외국스럽고 재밌었다. 약 15분가량을 타고 이동한 후 지하철역에서 나왔다. 날씨가 흐렸지만 구름이 사악 걷히며 동그랗게 햇빛이 비추었다. 좋은 징조인가. 역 바로 앞에는 아주 큰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 공원 옆 난 길을 따라 걸어가면 다. 탁 트인 푸른 풍경을 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곳에 공원 하나는 이용하기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도착했다. 아파트도 아니고 단독주택도 아닌, 옆집과 벽을 공유하는 타운하우스 같은 이었다. 현관문의 벨을 눌렀다. 위쪽에서 개가 요란하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강아지가 있나? 오히려 좋은데? 곧이어 집주인 여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문이 열리니 개 짖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집주인을 따라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문을 한번 더 여니 와글와글, 시츄 두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꼬리를 흔들며 난리를 쳤다. 미치겠다, 여기 최고잖아? 갑자기 집에 대한 호감도가 수직 상승했다. 집주인은 강아지들을 진정시키며 내게 방을 보여주었다. 강아지들은 방 안으로 따라 들어와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방 상태야 뭐, 사진에서 본 그대로였다. 주방과 화장실도 둘러보았다. 별다르게 특이한 사항은 없었다. 오래된 집이었지만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나는 책상 의자에, 집주인은 침대에 앉아 우리는 얘기를 나누었다. 예전에 이 방에 살던 일본인 여자가 한 달 만에 갑자기 나가는 바람에 집주인은 오래 거주할 사람을 구하고 다고 했다. 한국인과 일본인 여자만 받 이유는 예전부터 쭉 그래왔던 것도 있고, 방을 더럽히지 않고 잘 쓰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상한 이유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렌트를 해주는 방은 두 개인데, 다른 한쪽 방 살고 있는 사람 곧 나갈 거고 7월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다. 동네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근처에 내가 이용하는 은행도 있고, 20분 정도 걸으면 코리아 타운이라 한인마트도 있으며, 휴식과 운동을 하기 좋은 공원이 있다 했다. 오면서 그 공원을 봤기 때문에 나는 그 말에 공감했다. 코리아 타운은 너무 가깝지 않아서 좋았다. 한국 음식은 먹어야겠지만 한국인들 틈에 끼긴 싫었으니. 집주인은 나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했다. 나는 한국에서 대학교 3학년 고 캐나다에 막 도착한 워홀러라고 했다. 어제 갑자기 집 계약이 파기되는 바람에 고생을 좀 했다는 얘기도 했다.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영어 대화에 조금 진땀을 뺐지만, 집주인은 다행히 내게 '영어 잘하네!' 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대화의 흐름이 좀 끊길 때가 되자, 집주인은 더 궁금한 게 없냐 물었다. 나는 사심을 가득 담고 물었다. '강아지 만져봐도 돼요?' 집주인은 웃으며 당연히 된다고 하였다. 한 마리는 엎드려 자고 있었고 한 마리는 앉아서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앉아 있는 강아지에게 손을 뻗어보았다. 강아지는 순하게 내 손의 냄새를 맡았고 나는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제 하루종일 울었던 게 잠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집주인에게 이 집에 살고 싶다고 했다. 집주인도 가 마음에 들었는지 좋다고 했다.



계약금 50불만 선지불하고, 나머지 700불+750불(보증금 한 달 치 방세)은 입주하는 날 내기로 했다. 집주인에게 다시 한번 더 영수증에 대해 물어봤는데 당연히 써준다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집주인과 강아지들과 인사를 나누고 나는 임시 숙소로 돌아갔다.



토론토 6일 차. 드디어 장기숙소로의 이사 날이다. 짐을 다 싸고 나니 정말 한가득이었다. 사진에 보이는 캐리어 두 개와 장바구니, 캐리어백, 그리도 사진에는 없는 크로스백과 백팩까지. 거의 60KG는 됐을 거다. 옮기는 게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가벼워서일까. 이번에는 그렇게 무겁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우버를 불러 장기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가 가야 하는 곳은 집의 2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었다. 짐을 하나씩 옮기면 뭐 못할 것도 없다지만 그래도 캐리어 하나하나가 말도 안 되게 무거워서 조금 걱정이었다. 현관문 앞에서 이걸 어떻게 옮기지 고민하고 있던 그때 어떤 선글라스를 낀 백인 남성이 지나가다가 내게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엇, 네. 가.. 감사합니다?' 나는 일단 현관문의 벨을 눌렀다. 저번에 본 여자 집주인이 아니라 웬 덩치 큰 남자가 나왔다. 남자는 나한테 오늘 들어오는 사람이 냐 물었다. 아, 이 사람도 여기 집주인인가 보다. 맞다고 하니 남자는 내 캐리어 하나를 번쩍 들고 계단을 올랐다. 선글라스 낀 남자도 다른 캐리어 하나를 들고 계단을 척척척 올라갔다. 얼떨결에 백팩과 크로스백만 든 나는 계단을 토도돗 따라 올라가 큰 소리로 감사하다고 외쳤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는 웃으며 다시 계단을 내려가 제 갈 길을 갔다. 그 사이 집주인 남자는 내 방까지 캐리어들을 옮겨주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강아지들이 난리가 났다. '새 사람이 왔다! 아니, 전에 봤던 사람인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신나게 돌아가는 강아지들의 꼬리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남자 집주인은 한 번 더 집 구조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자신의 이름과 여자 집주인의 이름, 그리고 강아지들의 이름까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곧 나가봐야 한다며 나에게 방에서 편히 쉬라고 했다. 방문을 닫으려는데 강아지들이 고개를 들이밀길래 방 안으로 들이고 문을 닫았다. 묵직한 캐리어를 방 한가운데로 옮겨 펼치니 강아지들의 지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정말 웃기고 귀여웠다. 물론 한 번밖에 못 들은 강아지들의 이름은 금방 잊어버렸지만, 아무렴 어때. 귀여워서 마음껏 쓰다듬었다. 하, 나 정말 이사 성공적으로 마쳤구나. 하루동안 방 보러 다닌다고 비 맞으며 개고생 하고, 하루동안 눈물 줄줄 흘리며 시체처럼 누워있었는데. 이제는 웃으며 강아지들을 만지고 있다니!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일이 순식간에 잘 풀렸다. 정말 다행이었다. 방에 좀 익숙해지니 주변 동네를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직 낮이니까 짐 정리하기 전에 한번 주변을 아다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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