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브문 May 17. 2023

쉽지 않았던 일 구하기_3

응? 나 취업된 건가?

늦잠을 자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이 나라에서는 누가 먼저 나에게 전화를 걸 일이 없기에 이건 분명히 구인 전화일 거라고 확신했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벨소리가 2번 정도 더 울린 뒤에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역시나, 내가 이력서를 넣었던 여러 곳 중 하에서 터뷰 제안을 다. 이번엔 레스토랑 서빙 아르바이트 면접이었다. 가게 위치와 인터뷰 시간을 들었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감사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도착한 지하철역에서 나오니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냥 갈 수 있는 길도 빙 돌아가야 했기에 좀 헤매서 늦을 것 같았다. 지하철역에서부터 거리가 좀 있었기에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뛰기 시작했다. 날은 화창했지만 여름이었기에 땀이 뻘뻘 나기 시작했다. 일부러 뽀송하게 하고 나온 건데 헛짓거리가 된 것 같다. 가게에 도착하니 3분 정도 늦었다. 사장은 널찍한 가게의 가운데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죄송하다고 하며 빠르게 들어가 맞은편에 앉았다.


사장은 자기소개와 함께 가게 소개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개는 거의 10분 정도 이어졌다. 나에 대해서는 언제 물어보는 거지? 계속해서 듣고만 있으니 이게 인터뷰인지 가게 홍보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사장은 마지막에 '넌 여기서 금, 토, 일 3일 일하게 될 거야. Smart serve 자격증 있지? 좋아, SIN 넘버 알려주면 되고, 이번 주부터 나오면 돼.'라고 말했다.


응? 나 취업된 건가? 이렇게 바로?? 좀 이상했다. 일단 알겠다고 인사를 하고 나왔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진짜 여기서 일하게 되는 건가? 가게가 얼마나 사람이 급했으면 이렇게 금방 취직을 시켜주는 걸까. 너무 힘든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 어쨌든 급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일단 금~일 파트타임이라도 구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금요일이 되었고 영업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가게에 도착했다. 사장은 메뉴판을 주며 모두 외우라 시켰다. 가게 구석에 앉아 노트를 꺼내 똑같이 받아 적으며 메뉴를 외우기 시작했다. 파스타, 피자, 수프, 디저트와 커피, 술 등 메뉴가 정말 너무 많았다. 하루 만에 외우지는 못할 거 같았다.


한 시간이 지나고 손님들이 올 때가 되자, 사장은 내게 앞치마를 건네며 우선 접시 정리부터 하라고 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처음 일을 시작하는 거라 그런지 조금은 떨렸다. 처음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가족단위의 손님들이었다. 나 말고 다른 웨이트리스는 자연스럽게 다가가 메뉴 주문을 받았다. 멀리서 영어로 오가는 대화를 들었다. 메뉴를 그냥 시키는 게 아니라 커스텀 메뉴를 주문하는 것 같았다. 이내 웨이트리스는 주방에 메뉴를 전달했다. 잠시 후 음식이 나올 때 웨이트리스와 함께 그 음식들을 서빙했다. 그리고 그는 손님들에게 내가 처음 온 아르바이트생이며, 곧 자주 보게 될 거란 얘기를 했다. 손님들은 웃으며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따뜻한 인사에 나도 웃으며 감사하다고 답했다.



금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이어 손님들이 많이 들어와 정신없이 접시를 나르고 치웠다. 중간중간 나에게 질문하는 손님들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빠른 말투에 영어를 알아듣기 어려워 곤란했다. 나는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다른 웨이트리스를 부를 뿐이었다. 제대로 일처리를 못한 것 같아 좀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일이 끝나고 사장이 20불을 팁으로 챙겨주며 고생했다고 말하는 걸 듣고 기분이 좀 나아졌다. 일을 나쁘지 않게 한다며 내일은 더 잘해보자고 했다. 처음 받아 본 팁이 신기했고 다음 날은 더 잘해봐야지 생각하며 잠에 들었다.



일할 때 위아래 모두 검은 옷만 입어야 해서 가까운 오프라인 쇼핑몰에서 검은 옷을 몇 벌 샀다. 그리고 또다시 가게에 출근을 했다. 메뉴도 정확히 외우지 못했는데 손님들은 보통 더 어렵게 주문을 했다. 토마토소스가 베이스인 피자에 토마토소스를 빼달라거나, 여러 가지 종류의 파스타 면을 섞어서 달라고 하거나, 피자 한 판과 샐러드 한 판을 시키며 두 접시에 반반 나눠서 담아 달라고 하거나···. 어떤 손님은 피자의 토마토소스와 치즈를 모두 빼고 도우 위에 검은 올리브만 올려달라고 했다. 정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쉽지 않은 주문에 여러 번 되물어야 해서 결국 중간부터 다른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고 난 다시 서빙만 하기 시작했다. 무겁고 뜨거운 접시를 나르다 보니 손목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곤 했다. 특히 움푹한 접시에 넘칠 듯 말 듯 가득 담긴 수프를 옮기는 건 정말로 힘들었다. 영어 공부도 더 해야 했고 메뉴도 더 정확히 외워야 했고 서빙도 더 빨리 해야 했다. 부족한 점이 많았다.


게다가 주 3일 파트타임으로만 일하며 버는 돈은 여전히 월세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기에 다른 일까지 알아봐야 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계속해서 Kijiji 사이트와 오프라인으로 가게를 돌아다니며 이력서를 냈다. 곧 다음 월세를 내야 했고 모아놓은 돈은 점점 떨어져 갔기에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샐러드 집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러 갔다. 내게 무엇을 할 수 있냐 물어 한국에서 캐셔와 서빙일을 모두 해봤고 잘할 수 있다고 답했다. 알겠다고 하며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동쪽에 있는 개업 예정인 작은 개인 카페에서 연락이 왔다. 한국에서 온 워커라고 하니 캐나다에 온 걸 환영한다고 했다. 어떤 커피를 만들 수 있냐고 해서 아메리카노부터 카페모카까지 여러 메뉴들을 줄줄 읊었다. 그들은 내게 함께 일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나중에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서쪽의 초밥집에 갔다. 서빙 트라이얼을 시켜서 2시간 정도 일했으나 손님이 많이 없어 내 실력을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 영어실력이 부족해 제대로 일을 못할 것 같다며 일자리를 주긴 어렵다고 했다. 남쪽의 햄버거집에서 연락이 왔다. 기본 메뉴와 포스기 사용법을 익혔다.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으나 시간대가 기존에 하던 아르바이트랑 하루가 겹쳤다. 조정이 불가능해서 결국 죄송하다고 하며 일을 못했다.


···


이런 생활이 계속 반복됐다. 쉽지 않았다. 학교나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어서 남는 게 시간이었는데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제대로 된 파트타임 하나 구하기가 어려웠다. 내 아르바이트 경험과 실력은 부족한 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인 건지 아니면 외국인 노동자여서 그랬던 건지 쉽사리 일이 구해지지 않았다. 게다가 주말에 일하는 레스토랑에서도 여러 차례 실수를 저질렀다. 계속되는 거절과 삐걱거림에 피곤함을 느꼈다. 그렇게 한 달이 그렇게 지나가며 7월이 되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며 나는 다음 달 방세를 내야 했다.


그리고 옆 방에 새로운 하우스메이트 K 씨가 들어왔다.

작가의 이전글 쉽지 않았던 일 구하기_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