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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Nov 30. 2018

우리가 만난다고 달라지는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겠지만  <어디까지 해, 봤니? 창작으로 먹고살기>

장황하고 두서없는 이 글은 2018.11.23(금)에 진행된 <어디까지 해, 봤니? 창작으로 먹고 살기>
모임 후기입니다!





<어디까지 해, 봤니? 창작으로 먹고 살기>

우리가 만난다고 달라지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겠지만, 일단 만났습니다.   

서울혁신파크 청년청 1층, 오시는 길에 헤매실까 봐 찾아오시는 길 곳곳에 포스터를 붙였습니다.

어떤 분들을 만나게 될까? 고민과 걱정을 덧붙이며, 준비를 마쳤습니다.


출력해 온 포스터가 어디갔나 했더니, 전-부 여기 붙어 있었어요. 겸조야! 한 장만 붙이랬잖아 ^^


오늘의 모임 장소는 서울혁신파크 청년청 BAKE X, 네 명의 창작자들이 모여 운영 중인 자립 실험실로- 오늘 모임에 흔쾌히 공간을 빌려주었습니다. 오늘의 자리를 만들기까지,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인사를 하는 것으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청년청 102호, BAKE X 가는 길


말 그대로 "어디까지 해, 봤니?"는 보람기획과 겸조그라픽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것이 첫 번째 순서였습니다.


경험을 확장하고, 일을 배우기 위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이봄, 자신이 가진 능력과 기술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시도했던 겸조의 활약상(?)을 공유했습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경력을 쌓아온 이야기에서,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이 하나의 포인트였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할 수 있었던- "어떤 경험을 했고, 그 경험으로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소개 문구에 써두었던 약력에 관련한 일들이었습니다.


아주 아주 열심히 일했던 이봄의 아주 아주 짧은 약력


이봄 : 직장경력 5년차. 여섯 번의 퇴사와 다섯 번의 이직을 경험했으며, 자발적 노동자로 살아간지 1년차입니다.


스펙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대외활동, 네 번의 인턴경험, 어렵사리 들어갔지만 3개월 만에 퇴사한 첫 번째 직장,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왔던 두 번째 직장, 노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름의 격정을 쌓았던 네 번째 직장, 다섯, 여섯 번째 직장 등 "내가 하는 일이 곧 나 자신"이라고 여겼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어요. 무엇이든 시작하려면 바닥에서 올라가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인턴만 네 번째, 수습사원은 여러 번 겪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얻은 것은 눈치코치 알아차리기, 일의 0~10까지 설계하기, 열심히 실패하기, 망하고 또 망하고 망하고 망하기, 행정의 언어 요령껏 쓰기, 빈틈 발견하기, 일을 쉽게 하려고 용쓰는 잔머리 굴리기, 일과 취미생활 사이 발견하기, 내가 뭘 할 줄 아는 인간이구나 알아차리기, 실무에 바로 쓸 수 있는 실속형 디자인/편집기술, 낙서를 일러스트로 작업하기, 시키지 않은 일도 열심히 했지만 결국 쓸모없다는 것 깨닫기 및 몇몇 신체기관에 생긴 염증들이었습니다.  


꿈만 꾸고 살지 않겠다던 몽겸조의 약력
겸조 :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대표나 대장이나 사장을 맡아 일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7년차 정도 됩니다.



내가 가진 기술로 먹고살 수 없을까? 고민했던 겸조는 기술과 능력을 연결하는 프리마켓을 시작으로, 거리로 나갑니다. 홍대 앞 거리에서 사람들의 캐리커쳐를 그려 뱃지로 만들어 팔았던 적도 있고요. 단속을 당해 뱃지기계를 뺏길 뻔하기도 했답니다. 옛스러운 문방구를 컨셉으로 신촌에서 운영했던- 문구도 팔고 술도 파는 몽롱 문방구는 2년 6개월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일러스트, 만화, 서양화 등 예술하는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 움직였던 몽랩, 현재의 브랜딩 매니저로서 활약 중인 겸조그라픽까지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겸조의 첫 번째 책인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 수 없을까?』(2017)에 소개되어 있지만 소량제작으로 현재는 절판되었습니다.


겸조가 이를 통해 얻은 능력은 여러 가지입니다. 낯설게 볼 용기 내기, 무턱대고 다가갈 뻔뻔함 갖기, 혼자서 1부터 10까지 해보기, 내 가게는 내가 꾸미는 기술 갖기, 친구들과 함께 해보기, 무엇이든 옛스럽게 그리기, 원하는 것을 잘 만들었을 때의 포만감 누리기, 기획하고 계획한 것을 실현하기, 하려는 일과 하는 일을 브랜딩 하기, 일관성 갖기, 내가 한 달에 얼마를 쓰는지 기록하기, 한 달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 파악하기 및 아무리 바빠도 일단 신중하고 천천히 호흡하기를 배웠습니다.  







창작자, 생산자, 사업자, 기획자, 마케터, 브랜드 매니저,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

우리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기술들의 총체로서 지금이 있습니다. 단 하나의 일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를 안정적으로 고용하는 곳은 없지만, 여러 가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자발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정적인 급여는 없지만, 불규칙적으로 일하며 생활을 유지합니다. 그렇기에, 자발적 노동자로 살아가며 꼭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기술은 '돈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모임의 두 번째 파트에선, 현재를 유지하는 다양한 방법 중 가장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맥락, 버는 일쓰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나는 얼마짜리 인간일까? : 버는 일

직장에 다니며 받았던 연봉을 이야기했습니다. 일을 할수록 연봉은 올라갔지만, 이직, 독립, 월세 등 의 이유로 정기적으로 저금할 수 있는 금액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운이 좋아 월급이 밀리지 않는 직장에 다녔고, 고정적인 수입을 받는 동안 모아둔 돈은, 물론 탕진하고 없습니다. 자발적 노동자로 살아가며 했던 일, 행사 홍보물 만들기, 디자인하기 가장 어려운 작업인 명함 만들기, 한 겨울 공원 외벽에 시트지 붙이기, 악보 컬러링북 만들기, 삽화 그리기, 마을지도 만들기 등 다양한 외주 작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외주 받아 진행했던 작업은 행사 포스터 만들기였습니다. 한 건에 15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당시 저의 최소 생활비였던 120만 원을 벌기 위해선 한 달에 8건 이상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사실상, 한 달에 여덟 건 이상의 포스터를 작업하는 것은 어려울뿐더러, 그만큼의 일이 들어온 적도 없습니다.


나는 얼마짜리 인간일까요? 내가 하는 일에 얼마를 받아야 할까, 정하는 일입니다. 사실 얼마를 받아야 한다는 기준을 정한다 해도, 이 근거는 쉽사리 무너지곤 하는데요. 자발적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쪼렙'이던 시절에는, 무조건 일을 주는 쪽의 예산에만 맞추었습니다. 내 작업의 단가를 정하기도 전에, 손쉽게 주도권이 넘어갔습니다.


|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거절합시다!

지금도 만렙이라고 이야기할 순 없지만, 일의 규모와 범위, 기획단계의 원고 완성도, 자체 기획 여부, 과업수행기간("이번 주 까지 해주세요!!") 등을 재고했을 때, '얼마를 받아야 하는 과업'인가 어림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에 대한 숙련도완성도가 어느 정도 파악된 단계에 이르러서야 "저 정도 예산이면 내가 엄청 호되게 착취당하는 수준은 아니겠구나"를 알아챌 감이 생겼다는 거죠. 즉, 어떤 일을 거절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는 겁니다. 내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계산했을 때, 적정한 예산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쪼렙일 땐, '물 들어올 때 노 젓자!' '또 언제 돈을 벌겠어!'라는 생각에, 들어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내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내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될지, 전혀 판단할 수 없던 시기였습니다. 대체로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화가 쌓이고, 알고 보니 내가 다 하고 있네? 등을 뒤늦게 깨달으며, 남는 것은 스트레스와 약값이었습니다. 일을 구분하는 능력을 쌓는 것, 거절하는 힘을 쌓는 것이 내가 얼마를 받아야 하는 사람인지 알게 하는 단초가 됩니다.


+ 앗차, 여기서 도움되는 자료를 추가하자면, 일러스트 작업의 경우는 구글에 '2018 일러스트 단가표'를 검색하면 손쉽게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새 통용되는 단가는 얼마인지 파악하고 있다면, 내가 받아야 할 기준을 정하는 것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 나는 얼마나 쓰는 인간일까? : 쓰는 일

쓰는 일은 크게 두 가지, 돈과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버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달 생활을 위해 드는 돈이 얼마일까?


5년째, 가계부를 쓰고 있는 겸조는 매월 지출하는 고정비의 목록을 공유했습니다. 물론 숫자를 보이지 않으려고 머-얼리서 표로 보여주었습니다. 하하. 한 사람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지출과 문화생활 및 경조사에 해당하는 이벤트성 지출 등, 한 달에 얼마를 사용하는지에 대한 지출을 적습니다. 내가 얼마를 쓰는 인간일까, 숫자를 알게 되면 얼마를 벌면 살 수 있을지 알게 됩니다.


지금, 미래에 얼마가 필요한 지 알게 되면, 얼마를 더 벌어야겠다,
 얼마를 더 저축해야겠다를 알게 됩니다.



두 번째로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초, 중, 고 방학 때마다 이와 같은 생활계획표를 만들었는데요. 저는 단 한 번 도, 실천한 적이 없었습니다.

회사생활을 할 때에도, 9시에 출근해 12시에 밥을 먹고 6시에 퇴근합니다. 물론 야근과 주말특근에 시달린다면 그 시간은 좀 더 늘어나겠지요. 탄력적 근무제를 시행하거나 시간선택제로 근무할 당시에는 10시에 출근하는 정도의 차이였을 뿐. 9시에 1교시를 시작하는 학교생활과 다를 것 없던 회사생활은, 주어진대로 시간을 쓰는 법의 연속이었습니다.


시간을 쓴다, 낸다, 번다는 말은 자발적 노동자에게는 가계부를 쓰는 일과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겸조는 자신이 일 한 시간을 기록하는 노트가 있습니다. 데일리 리포트에는 1시간 단위로 기록하는데요. 과도한 노동을 하지 않도록, 동시에 현재 맡고 있는 프로젝트의 진행률을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저는 시간 기록부 대신 오늘 할 일에 대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업무 기록부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이 기록부에는 해야 할 일을 과제별로 크게 적지 않습니다. 되도록 작고 사소한 일, 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들부터 기록하고, 지워나가는 성취감을 선물합니다. 오늘도 많은 일을 조금씩 해나갔다는 성취감은 오래 일 할 수 있는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이야기 나누며 다섯 가지 힘을 이야기했는데요,

가늘고 길게 살아남기 위해 드는 힘, 정도라고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이외에도 필요한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 정보력 - 내가 하는 일,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호기심, 생각만 하지 말고 일단 검색해볼 것! 찾아볼 것!

 : 체력 - 마음에도 체력이 필요합니다. 운동도 하셔야 해요. 뭐든 오래 하려면 근육이 필요해요.

 : 능력 - 일에 대한 전문성과 완성도는 디폴트입니다.

 : 일축력 - 이건 뭔가 말을 잘 지어내고 싶어서 '일축한다'의 일축에 힘력을 붙인 건데요,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아는 것, 그래서 거절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무리하지 말자고요.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것은 동료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직장생활에도 동료, 조직 안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데요. 거대한 소속이 없는 자발적 노동자에게도 동료는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고민을 의논할 수 있고,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는 가장 좋은 지지기반이자, 비빌 언덕이 됩니다. 내 편이 생긴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든든한 일입니다. 다만 경계하길 바라는 것은 - 어디에서든 - 그 편이 판이되지 않도록 주의하자는 겁니다. 하여 마지막으로 적은 힘은 '편이 판이되지 않는 연대'입니다.



모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지금의 행보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1인 기업가, 소셜벤처 창업가, 기획자, 디자이너, 활동가.. 다양한 분들을 만나 뵙고 이야기 나눈 것이

제겐 가장 큰 도움이 되었어요. 저도 그들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막연하게 시작한 이 날의 모임이 누군가에게 닿아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만난다고 달라지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열 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나니, 제게는 아주 조금의 뿌듯함과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두서없이 주절주절했던 모임의 시작이, 다음이라는 기회가 생긴다면

조금 더 깊고 굵직하게 준비하겠다는 기약을 하게 만듭니다.


너무 많은 것을 쏟아내고자, 장황하게 쓴 글이지만- 이 또한 언젠가 누군가에게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어디까지 해, 봤니? 창작으로 먹고살기> 소개글

https://brunch.co.kr/@2bom-do/114



 *최소 생활비 = 문화소비를 하지 않고 숨만 쉬며 살아도 드는 비용으로 고정적이고 필수적인 주거비, 식비, 교통비 등을 포함한 지출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했습니다.

 *'창작으로 먹고살기'는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글로 적어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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