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과 생활, 그리고 사람
집을 나온 건 작년 10월의 일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집에서 한 시간 삼십 분 거리인 직장을 바꿀 수 없어 잠자리를 바꾸기로 한 것. 그 결심은 야금야금, 서서히 들어섰다. 2017년 6월, 한 달 만에 집을 찾았다. 20여 년을 지나다닌 골목은 여전하고 꾸준하게 익숙했다. 엄마 집을 나온 지 9개월. 독립과 생활, 그리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 졌다. 그리고 그건 나와 내 주변에 대한 이야기다.
독립이란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지불로 책임을 다하는 건, 왠지 모르게 어른들의 영역인 것만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결같이 엄마 그늘 밑의 아이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인천에서 서울, 출퇴근 왕복 3시간. 나란 사람은 환승에 최적화되어갔다. 어디에서 타야 앉아갈 수 있는지, 빨리 내릴 수 있는지, 달려가야 할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위치를 몸이 외워갔다. 사람이 많은 구간에선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 버티기 신공을 부리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닿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부족한 잠을 채우느라, 서서 쪽잠자는 법을 익혔고, 한강 위를 달리는 구간에선 뜨는 해나 지는 해를 바라보며 커다란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러기를 1년, 체력적 한계와 여유로운 저녁에 대한 갈망 사이로 평소 흘려들었던 이야기를 회상하게 된다.
야근이나 회식이 있는 날이면 가까운 동료, 수수 집에서 잠을 청했다.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다 두 번- 세 번, 서서히 횟수가 늘어갔다. 직장에서 30분 거리였던 그 집에서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달콤했다.
집을 나서는 건 어떤 결정적인 계기와 결심이 아니라 서서히 찾아왔다. 원래 그러기로 했다는 듯 우연을 가장한 설득이었다. 큰 반항이나 억지, 갈등과 노파심이 아니라 납득과 이해를 바라며 짐을 쌌다. 큰소리 한번 나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날쌔게, 조심스럽지만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골목, 20여 년을 살아온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옴과 동시에 괴성을 질렀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자유다!'를 외쳤다. 내가 짐을 싸는 내내 초연했던 엄마는, 사라지는 내 뒤통수 너머로 눈물을 보였다. 그 눈물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던 건, 서로를 해방시키자는 목적 너머로 내 일상의 모든 선택지는 사사건건 자유로울 것이라 기대되기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조금 더 잘할걸! 이라며 오늘을 후회하는 날이 오게 될까?' 고민과 걱정보다, 이 행복이 떳떳했던 이유는 집과 직장의 거리만큼, 엄마와 나의 거리도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글/그림 이봄 2bom.d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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