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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Oct 22. 2017

독립생활자들

쌀과 김치의 중력을 이겨내는 일

“만약 오늘 죽는다면,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게 뭐야?”


며칠 전, 친구랑 웃자고 떠든 이야기였다. 독립생활을 하며 각자 늘어난 요리 스킬을 자랑하던 와중에 나온 말로, 그 친구는 단연- 자기가 한 김치볶음밥이라고 이야기했다. 한참을 뜸 들이던 나는, “난, 엄마 냉잇국. 김치 넣고 끓인 얼큰 시원한 냉잇국. 그 맛은 어디서도 못 찾겠더라고.” 그러고 보니, 엄마 밥이 먹고 싶어 졌다.      


뚜드드드,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 딸랑딸랑 밥 짓는 소리, 보글보글 국 끓는 소리. ‘밥을 먹다’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소리들이다. 생각해보면, 이 소리들은 엄마가 내는 소리였다. 어린 날, 밥상 위에서 내가 하는 일이라곤 수저를 드는 일 또는 씹는 일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나물은 싫고 햄이나 달라는 투정을 부렸으니, 내가 내는 소리라고는 고작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에 섞인 투덜거림이나 수저로 밥그릇을 긁어먹는 소리뿐이었다.  

   

반찬 하나마다 드는 정성과 품이 다름을 알게 된 것 또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시금치나물을 해내는 것은 뚱땅 20분 정도면 거뜬한데, 잡채라는 것을 할라치면, 들어가는 모든 재료들을 저마다대로 손질하고 재우고 볶아, 두 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을 몰랐다. 다 똑같은 그릇에 담겨, 오늘은 반찬이 몇 가지구나 라고 스쳤을 뿐이었다. 밥상 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노동과 가치를 너-무 몰랐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밥상 위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저 엄마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티브이 만화영화를 보거나 숙제를 하다 배가 고프면 혹은 먹으라고 부르면 가서 거드는 것이 고작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부엌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하등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내 머릿속 엄마의 자리는 부엌에 있었고, 그걸 당연하게 여겨왔다. 엄마는 음식 솜씨가 좋았고, 늘 맛있었다. 나는 그것이 모든 엄마들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소풍날 아침에 싸주시는 김밥이 당연했고, 간식으로 해주시는 각종 샐러드와 주전부리들이 보통의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언제 틀어도 똑같은 일일드라마 속 가족들 같이, 모든 엄마들이 그러하고 모든 아빠들이 다 이러하고, 막내딸인 나는 어리바리 사고뭉치 역할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엄마 곁을 떠나온 지 1년이 된 가을, 이제는 엄마 집에 오는 것이 제법 어색하고 낯설어, 날이 갈수록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 모르게 바뀌는 동네 풍경이라든지, 이웃집 누구네의 소식을 한 두 달 늦게 듣는 것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왠지 모르게 야속하게 느껴지는 날들도 있다. 엄마의 호출을 받고 어제 일찍이 인천에 와, 내 손이 닿아야만 안심하는 엄마의 살림들을 챙겨본다. 내 생활을 하고서야 보이는 것들- 엄마 집은 왜 이렇게 깨끗할까, 수납함은 왜 이리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걸까- 그리고 부엌에 서서 분주한 엄마 모습이 보인다.  

    

오늘 늦은 오후에 서울로 간다는 이야기에, 엄마 마음이 앞서간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가 엄마 반찬을 잘 먹느냐부터 시작해, 무슨 반찬을 해주면 좋아할까, 무얼 더 챙겨줄까, 엄마의 손이 바빠진다. “전에 해준 샐러드, 그거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라는 속없는 한 마디에, 엄마의 일이 시작된다. 감자와 마, 달걀을 넣고 푹푹 찌고, 오이와 양파를 다져 소금에 절인다. 맛살과 당근을 잘게 다져놓고, 다 찐 감자 껍질을 까서 으깬다. 마와 달걀노른자도 같이 으깬다. 절인 양파와 오이는 물기를 꽉 짜서 같이 놓고, 맛살과 당근은 기름에 살살 볶는다. 기름 뺀 참치를 넣고 마요네즈와 같이 한데 섞으면 내가 좋아하는 그 샐러드가 완성된다.      





매번 얻어먹기만 했지, 샐러드를 만드는 과정에 처음으로 함께 한 나는 “이거 보통일이 아니네?” 라며 시계를 본다. 오전 반나절이 지나갔으니, 네시간 정도 걸린 셈이다. 두고두고 오래 먹을 수 있고 맛도 좋아, 다음엔 내가 직접 해 먹어야겠다고 하니, “행여나! 고단한 시간 보내지 마라.” 고 하신다. 이 고단함을 흔쾌히 겪어낸 엄마는, 소풍날도 아닌데 이것저것 바리바리 음식을 싸주신다.    

  

“엄마, 엄마는 내일 세상이 망하면 오늘 뭐 먹고 싶어?”

“그런 싱거운 소리는 왜 해. 나는 낙지나 한 사발 먹으련다.”

“ㅎㅎ 엄마, 나는 엄마가 끓여준 냉잇국이 먹고 싶다고 했어.”

“참나~ 그 냉잇국은, 냉이가 어디서 왔느냐가 제일 중요한 거야.”

“왜? 난 엄마가 끓인 것처럼 맛있는 냉잇국 못 먹어봤는데?”

“냉이가 맛있어야 국이 맛있는 거야.”     



집에서 집으로 가는 길 (2017 겨울과 봄 사이)




맛있는 한 끼를 위해 들이는 정성과 시간들을 모르쇠로 일관했던 어린 날과 그 시절의 고마움을 되새기는 오늘이다. 독립, 독립생활이란, 엄마가 싸준 쌀과 김치, 음식의 중력을 이겨내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마 나는 오래도록 이 중력을 이겨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희미하게 웃음이 난다.      






글/그림  이봄 2bom.do@gmail.com
인스타그램 2bom.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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