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의 지인 결혼식이라 축의금만 내고 식당으로 직행했던 적이 있다.
뷔페식당이라 축의금 내고받은 하트 모양 스티커를 가슴팍에 붙이고 하얀색 접시를 들고 이곳저곳
둘러보며 음식을 담기 시작했는데
그날따라 메뉴명 옆에 있는 원산지 표시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역돔 회 : 모잠비크
갈비찜 : 멕시코
보쌈수육 : 폴란드
도라지 무침 : 중국
주꾸미 데침 : 베트남
정말 세계 각지에서 모인 식재료들로 만들어진 음식이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를 캐치프레이즈로 삼고 있는 농협 입장에서 보면 이건 용납되고 말고를 떠나
이렇게 먹다간 몸이 두 개로 쪼개지는 게 아니라
산산이 부서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할 처지였다.
암튼 그렇게 세계 각지의 식재료로 만들어졌다는 음식을 보며 괜히 입맛이 떨어졌는데
보쌈수육은 살보다 비계가 더 많았고 또 비계는 왜 그렇게 설컹설컹 맛이 없던지
역돔 회는 틸라피아라는 민물고기인데 아프리카 흙탕물에서 길러졌을 것 같았고
갈비찜 고기는 냉동창고에서 몇 년 동안 얼렸을 것 같은 데다가
도라지는 락스 물에 헹구어냈을 것 같은 그런 상상에 신통치 않게 먹고 나온 기억이 있다.
지난 토요일 아침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김밥 세 줄을 포장해와 아침으로 대신했다.
아이들은 김밥엔 컵라면이라고 하며 참깨라면을 뜯어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후룩후룩
면발을 끌어올렸다.
나도 국물만 좀 먹자고 하면서 한입 두입 마시며 용기 겉면에 쓰인 원료명과 원산지를 읽었다.
본격적인 노안이 시작되어 인상을 찡그려가면서 참깨라면의 깨알 같은 글씨를 읽다 보니
생소한 원산지에 찡그린 인상이 이내 찌푸려졌다.
미국과 호주에 온 밀은 익숙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온 팜유라고 거리를 벌리더니
참깨는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나이지리아에서 왔다고 쓰여있는 걸 보고 참 멀리서도 왔고
멀리서 오느라 수고가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지리아는 월드컵 본선 경기에서나 들어봤던 멀고도 먼 나라인데 이렇게 내 손에 쥐어진 컵라면 용기에 내가 거기 출신이라고 떡하니 쓰여있고
방금 나이지리아산 참깨 국물을 한 모금 한터라 기분이 묘했다.
치아 사이에 끼인 참깨를 혀로 발라내며
지구촌 한 식구라고 하는 게 이렇게 먹는 것부터 섞이는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