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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쫌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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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컨 Nov 25. 2021

빈정 상했던 국밥집

이른 추위에 퀼팅 누비 점퍼가 속수무책인 저녁이었다.

집사람이 가볼 곳이 있다고 하면서 이른 퇴근을

재촉했는데 막상 약속 장소에 제시간에 도착해 전화를 하니 정작 나와 약속은 까맣게 잊고는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었다.


차를 가지고 오는 집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찬바람이 불 때마다 짜증도 불같이 일어나

만나서도 냉랭하게 말도 없이 용건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뜨끈한 국밥으로 저녁 어때?"

하며 말을 걸어오길래 근처 국밥집으로 향했다.    



국밥집에 들어서서 편하신 데로 앉으라는 안내를

받자마자 국밥 두 개를 주문했다.

반찬은 셀프라고 해서 깍두기, 무생채, 배추김치를

담아가지고 자리로 왔는데 집사람은 휴대폰에

빨려 들어가 있었다.


보통 한쪽이 반찬을 담아가지고 오면

다른 한쪽이 물을 따라놓거나 수저를 세팅하는 게

기본일 텐데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는 모습에

아까 전 추위에 떨면서 일어났던 짜증 분노까지 화르륵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국밥이 나와서 수저를 던지듯이 건네고는

말 한마디 없이 저녁을 먹었다.

추위와 허기에 국밥의 수위는 빠르게 내려갔고

그에 따라 깍두기, 무생채, 배추김치도

바닥을 보이게 되어 한 번 더 리필이 필요했지만

절대 더 떠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평소 같으면 발딱 일어나 모자란 반찬을 소담하게

담아왔을 텐데 약속도 잊고, 물도 안 따라놓고,

수저 세팅도 안 한 채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 얄미워서였다.

 

뜨거운 음식을 잘 먹는 나와 그렇지 못한 집사람이라 내가 먼저 숟가락을 놓았고 몇 젓가락 남지 않은 반찬접시를 어떻게 하려나 보고 있었는데 집사람은 개의치 않고 남은 반찬으로 국밥을 비워나갔다.


나는 식탁마다 비치된 종이컵 중 한 개만

뒤집어 나만 마실 물을 따라 마시면서 입가심을 했다.  그리고 나도 휴대폰을 열어 눈에도 안 들어오는 뉴스를 기웃거리다 보니 집사람도 저녁을 다 비웠는지 물 한잔을 따라 마시고는 냅킨을 뽑아 입을 닦길래 따라 일어섰다.

나 혼자 삐진 부부의 저녁은 십분 만에 끝났다.


집사람은 내 심정 따윈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이런 날씨엔 국밥이 최고야!" 라며

본인이 메뉴를 잘 골랐다며 셀프 칭찬이었다.


의도적인 걸까 아니면 무심한 걸까

의문이 가득했던 밤이었다.

나만 열 받고 나만 생생한 기억들을

생일라고 명명하여 시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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