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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수난 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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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컨 Dec 10. 2021

화재보험이 있다고요?

"네 지금 관리사무소로 갈게요"


사고 후 개인적으로 가입한 화재보험이 없는 것을 알고 난감했다.

처이모가 보험설계사라서 우리 가족 보험을 전담관리해줬는데 처이모의 수 위주 보험 포트폴리오 때문에 그 많은 보험 중에 이럴 때 꼭 필요한 화재보험 하나 없다며 집사람은 분개했다.


그러다가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화재보험을 가입한 것을 알고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했더니 가입증서와 약관이 있다며 와서 확인해보라고 하는 통화를 막 끊는 참이었다.


아무 방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기댈 곳이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편의점에서 수고하신다며 전해드릴 선물용 주스

한 박스를 들고 관리사무소로 향했다.


책자 형태의 약관과 계약증서를 보니

보장금액은 화재로 인한 수선비가 5천만 원,

가재도구가 3천만 원까지인데

지급보험금은 손해액의 80% 까지라고 해서 최대 6,400만 원까지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관리소에서 찾은 화재보험 증권


바로 다음 날 보험사의 손해사정인이 와서 화재보험금의 집행 프로세스와 소실된 가재도구 

작성 양식을 주고는 또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손실된 가재도구 리스트 7장이나 되었다.

 

화재로 다 타버린 가재도구가 멀쩡했던 기억을 꺼내보면서 그걸 어디서 얼마에 샀는지를 일일이 기재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기억이 안 나서라기보다는 카드사 결제내역을 엑셀로 다운로드하여 보면서 '씀씀이가 왜 이러냐?' '그때 이게 이렇게 비싼 거였냐?' 라며

불똥이 잘못 튀기라도 하면 화재로 인마음 상처에 소금이라도 뿌린 게 되어 부부는 싸움을

시작했고 소실된 가재도구 리스트 작성은 뒷전이었다.


화재가 나긴 했지만 각자의 생업이 있어서

집사람은 집사람 일터로 아이들은 학교로 그리고 나도 회사로 나가게 되었고 퇴근 후 짬을 내거나

주말 시간을 할애해야 했지만 모든 게 바뀌어버린

의식주 환경에서 보험금 청구를 위한 구비서류 준비는 더딜 수밖에 없었다.

 

또 보험금을 지급해줄 보험사의 손해사정사와 기가재도구 가격에 대해서 하나하나 맞는지

틀린  대사 하며 옥신각신하는 작업은 피해를 구제받아야 할 입장인데도 을의 위치에서 소명하고 설득해야 하는지라 기분 상하는 일이었고

큰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나는 손해사정인을 고용하여 내가 입은 손해가 얼마인지를 대신 작성하게 하고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사와 협상하도록 했다.

그런 손해사정인에게는 지급보험금의 5~10%를 수수료로 제공하였는데 지나고 보면 아깝긴 하지만 집도 마음도 다 타버린 그때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가재도구는 그렇게 정리를 해나갔고 당면한 또 다른 문제는 타버린 집을 청소하고 새로 인테리어

하는 일이었다.

한 겨울  퇴근하고 나서 여기저기에서 소개해준 화재 전문 인테리어 업체와 만나 컴컴하고 매캐한 집을 손전등으로 비춰가며 눈대중 견적으로

'육천만 원만 주세요'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업자들과 대면했던 게  

열 번도 넘었다.


추위에 부들부들 떨기도 했지만

나의 화재피해가 누군가에게는 한몫 잡을 기회 인양 호구가 된 것 같아 분노에 부들부들 떨며

네 가족이 사는 원룸으로 돌아와서 히터를 부둥켜안고는 추위와 분을 삭였다.

여러 견적을 비교한 끝에 적당한 가격에 말귀도 알아먹는 업자를 골라 청소와 시공을 맡기게 되었다.


타버린 가재도구를 한 번에 쓸어버리기로 정한 하루 전 날 정말 꼭 챙겨야 할 것들을 고르기 위해 부부는 잿더미 위에 서서 물건을 하나하나 들추며 버릴지 말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타버린 집에 대한 미련이 없어 싹 다 버린다는 생각인데 반해 집사람은 그래도 쓸 수 있는 건 챙겨야겠다는 마음이라 겉면이 회색으로 변한 두루마리 휴지 뭉터기와 열기에 우그러진 플라스틱 샴푸통을 놓고서 부부는 또 싸움을 시작했다.


제발 버려라

절대 못 버린다라는 싸움의 끝은

결국 집사람 악다구니에 멈추고 말았다.


 "나도 갖다 버려라!"



7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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