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이른 출근이었다.
글을 쓴다고 하는데 너무 Input이 없어서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던 책을 의무감에 읽기 시작했다.
프롤로그를 다 읽어갈 무렵 뚜벅뚜벅 임원실에서
내 자리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는데
귀에 익은 이 발걸음의 주인공은 우리 임원이다.
아침 인사를 하려고 책을 덮고 눈을 마주치니 대뜸
"그래 그건 어떻게 돼가고 있어?"
늘 이런 식이다. 주어를 빼먹고 툭 던지는 말투 말이다. 진행되고 있는 게 한 둘이 아니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어떻게 돼가냐는 게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지요?"
윗사람 입장에선 세상 답답한 소리일 텐데
그 아침에 난 미쳤는지 그렇게 되묻고 있었다.
"왜 어제 회의 가서 알아본다고 하던 거 있잖아"
아 어제 회의 그게 있었다.
팀장한테 보고해서 더 안 해도 될 줄 알았는데
다들 귀만 열려있지 입은 닫고 있나 보다.
이런저런 경과사항을 설명하고 나니
"그래 알았어"
하며 어떤 의견도 디렉션도 없는 그런 답변으로
그 아침 임원과 짧은 대화는 끝났다.
사실 얼마 전부터 회사는 냉혹한 현실이라는 화두 아래 세대교체라는 단어에 강박을 느끼며 연말 조직 개편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 뒤숭숭한 분위기에는 어떠한 사고 이슈도 없어야 하며 돌아가는 소문에 귀를 쫑긋 세우느라 하던 업무는 자연스레 당분간 손을 놓게 되는 기간이었다.
그 속에 임원도 나도 있어서
임원은 내년에도 이 조직을 이끌겠냐 싶은 마음에
나는 내년에도 이 임원 밑에 있겠냐는 마음에
'어떤 거 말씀하시는 거냐?'라고 묻고 '그래 알았다.'라고 대답하는 흐리멍덩한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침 시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 되어갈 무렵
늘 소문을 물어다 주는 선배로부터 우리 임원이 이번 조직개편에서 자리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리가 없어지는 임원들 이름을 쏟아내기 시작하는데
마치 식당 메뉴판에서 '재료 소진 품절' 이라며 메뉴가 지워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왔더니 임원실에는 누런 종이박스 몇 개를 들여놓고는 짐 정리가 한창이었다.
그 시간 모바일 포털에서는 45세에 부사장이 되고 37세에 상무가 되었다는 특출난 인물들의 사진들이 여기저기 기사로 떠다니고 있었다.
수백 명의 승진 잔치라고 하는데 이면에는
수백 명의 마음 상처가 있을 테다.
세상에 제일로다가 쓸데없는 짓이 연예인 걱정, 임원 걱정이라고 하는데 잠깐이나마 내 처지에서 그들이 가여워 보여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