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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쫌생일기

사무실에서 전력질주하는 사람들

by 던컨

회사 건물은 가로 세로 80미터 정도인 정사각형 빌딩이다.

부지면적은 2천 평 정도 되겠지만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의 행동반경은 고작해야 50평 남짓이다.


출근하면 제 자리에 앉고 회의를 하거나

물을 마시러 가던가 화장실에 가거나 또는 임원방에 불려 가는 정도가 업무 중 이동패턴이다.

가끔 다른 층으로 회의하러 가기도 했지만 코로나 시국에는 온라인 미팅인지라 더더욱 제한된 행동 범위이고 재택 비율도 50%로 규정하고 있어 회사는 썰렁하고 고요하다. ​

그런데 그런 절간 같은 사무실에서 뛰어다니는 사람이 있다.

마침 내 자리는 통로 옆이라 그렇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속속들이 볼 수 있는데 하나 같이 과장된 액션이 필요한 사람이다.

진급을 앞두거나 보직을 받기 위해

Self-Motivation 된 그들은 마치 단거리 육상선수 같이 이 공간을 휘젓고 다니고 있다.

임원으로부터 호출인 경우가 종종 있다.

내게도 전화를 걸어와서 좀 들어와 보라 하는 경우가 생기면 전화를 끊고는 '왜 또 뭐 때문에 찾는 건데?' 하는 불평과 함께 슬리퍼 안에서 꼼지락거리던 발을 구두로 갈아 신고 한숨을 기합 삼아 수첩과 펜을 들고 마지못해 일어서는데 SM 피플들은 그렇지 않다.

일단 임원 호출 전화가 오면 전화로도 설명이 가능한 내용을 굳이 가서 설명드리겠다며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오프라인으로 전환하는

옴니채널 전략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분들이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딸깍 소리는 100미터 육상트랙 출발 총소리와 같아서 임원방까지 25미터 남짓인데 우사인 볼트 스타트로 출발한다.

내 자리는 그 트랙 중간으로 최고 속도를 올리는 지점이라서 쿵쿵쿵쿵 구둣발 소리와 몰아치는 바람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면 력질주 하는 그들의 목살과 턱살의 떨림을 볼 수 있다.

결승점인 임원방 2미터 앞에서 급정거를 한 다음 심호흡과 동시에 가벼운 노크로 들어서는 모습에서 방금 전까지 육상선수였다가 순간 회사원으로 변신한 모습이다.

상냥함과 단호함 그리고 명확성이 깃든 그들의 멘트가 임원방 밖으로 새어 나오고

바로 확인 후 보고 드리겠다는 퇴실 멘트와 함께 다시 그들의 질주는 시작된다.

이번에는 뛰어오면서 후배 직원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OO프로 작성하던 거 그거 좀 가져오고

OO프로는 나랑 이거 좀 보자"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질주를 구경하고 있는

나는 국민학교 운동회에서 수상권과는 거리가 멀어

친구들의 달리기 경쟁을 멀거니 구경하고 있는

어릴 적 내 모습 같기도 하다.

사무실에서 쿵쿵거리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마뜩잖아 쓴 글인데 인생에서 전력질주할 기회를 놓은 것 같은 자괴감이 들면서 내게도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전력질주할 생각은 있는 건지

할 수는 있는지 반문하게 되는 오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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