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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쫌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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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컨 Apr 10. 2022

우리 집이 시끄럽다는 윗집 여자

"후후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른 오전 시간 및 심야 시간 가정 내 소음에 각별한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소음은 아래에서 위로도 올라가오니 이 점 다시 쥬지하시어 다시 한번 가정 내 각별한 주의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른 오전...."


일요일 오전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관리사무소 안내방송은 분명 우리 집 들으라고 윗집 여자가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한 모양이다.

우리 집은 다리고 기다려서 구한 1층 집이다.


전에는 아파트 6층에 살았는데 7살 4살 아들 둘을 키우는 집이라 아이들 뛰는 소리에 아랫집 원성이 자자했다.

5층 남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와서 항의를 했는데 죄송하다 하고 현관문을 닫는 순간 죄송함은 아이들에게 분노로 번져서 '게발 그만 좀 뛰라고!' 하고 소리를 치는 게 일상다반사였다.

아이들도 그런 샤우팅 쇼크를 듣고 나면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니다가도 한 시간만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다다다다 뛰어다니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엘리베이터에서 5층 남자를 만나게 되면 아이들은 슬금슬금 아빠 엄마 뒤로 숨었고 5층 남자는 인사인지 비아냥인지 '아이고 요 녀석들 참 잘도 뛰게 생겼다.'며 5층부터 지하 1층 주차장까지 20초도 안 되는 순간을 정적 가득 불편한 시간으로 만들었다.

5층 남자는 주차장에서 구형 볼보 승용차를 몰고는 휙 하고 나가버렸는데 소란스러운 윗집 아이들 아빠라는 낙인에 아무 말도 못 하다가 그런 모습을 보고 나서는 '다 떨어진 볼보 타는 주제에" 라며 혼잣말을 하며 LPG 카렌스에 타타타타 시동을 걸곤 했다.


전세 만기 시점이 다가오며 근처에 이사갈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무조건1층 집으로 한다고 부동산에 신신당부해놓고는 매물이 나오자마자 계약한다고 약속을 했다.

때마침 아래층 남자의 컴플레인도 극에 달했는지 안 그래도 대머리였던 양반이 민머리로 올라와 컴플레인을 하기에 떳떳하게 '안 그래도 그리 시끄워하시니 전세 만기인 다다음달에 꺼져드릴 테니 적당히 하시죠'라는 투로 이전의 공손 죄송 모드와는 다른 배 째라 식으로 대답하곤 했다.


그리고 부동산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1층 매물이 나왔다고 연락이 와서 한 번 쓰윽 둘러보고선 바로 계약을 했다.

이제 아이들이.뛰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윽박지를 필요 없다며 부부는 안도했었다.

그렇게 이사 온 1층 집에서 우리는 그간 주눅 들어 살아온 시간에 대한 분풀이 마냥 발바닥을 온전하게 땅바닥에 붙이고 성큼성큼 걸을 수 있었다.

2층 집은 우리보다 어린아이가 있는 3대가 같이 사는 집이라 온 가족이 모이는 주말이면 시끌시끌 야단법석이었지만 우리 아이들도 그간 많이 시끄럽게해 주변에 불편을 준 만큼 꾹꾹 참았고 시끌벅적한 주말이 지나고나면 윗집 아저씨는 텃밭에서 따온 상추 한 봉지를 건네며 '많이 시끄럽죠?' 라며 미안함을 대신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곤 보냈다.


그렇게 상추를 몇 번 받아먹다가 언상추 봉투를 건네주던 아저씨는 '저희 다음 달에 이사 가요'라는 얘기를 했다.

그때까진 몰랐다. 그냥 공짜 상추가 끊기는 건 줄 알았다.

윗집새로운 집이 이사 온 다음 날 아파트 안내 방송울리기 시작했다.

"000동 저층부에서 원인모를 소음으로 인해 민원이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었다.

000동 저층부이면 우리 집인데 최저층부 1층인 우리 집도 아무 소음 컴플레인이 없는데 무슨 소리야? 하며 의문 가득한 안내 방송이었다.


그러다 며칠 후 윗집인 2층 여자를 만났다는 집사람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사오자마자 너무 소음이 심해 3층에 올라가니 갓난쟁이가 있는 집이어서 소음 원인을 찾지 못하다가 아랫집 우리 아이들을 보고는 시끄러우니  자제해달라는 얘기를 공동현관에서 듣고 오는 길이라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전에 살던 6층 집에서 아랫집 5층 남자가 시끄럽다고 닌리를 쳐대서 일부러1층 집으로 이사 오니 이제는 2층 집에서 시끄럽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는 어쩔티비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2층 집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뛰거나 의자 끄는 소리만 나도 '쿵쿵'지팡이 찍는 소리를 내며 경고 소음을 보내곤 했다.

보통 층간소음은 아랫집이 윗집에 항의를 하는 게 일반적인데 윗집에서 아랫집에 경고를 주고 시끄러우면 경고 소음을 보내는 게 마치 주인집 지하실에 얹혀사는 사람들 마냥 기죽는 것 같아 약이 올라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일주일여 집을 비우고 돌아온 다음 날 일요일 아침 관리사무소 안내 방송에 소음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다는 멘트에 꼭지가 돌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 고요를 추구하던 위층에서 덜그럭 쿵쿵 절구 찧는 소리 내는 이 밤시간 '너네도 정말 시끄럽다.'라고 올라가 따지고 싶지만 실제론  못 하고 이렇게 글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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