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과 식사는 늘 불편하기 마련이다.
사주는 임원이야 같이 밥 먹으며 잘해보자 친해보자 이런 마음이겠지만 같이 먹는 평사원은 얼른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뿐이고
마냥 먹는데만 열중할 수 없어 식사 중 대화거리를 몇 가지 준비하지만 이내 곧 대화가 끊기는
침묵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다른 이야기 소재는 뭐 없나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다 보니 맛도 모르는 음식을 씹어 넘길 때가 대부분이다.
본부장과 점심이었다.
원래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예약을 했는데
엊저녁에 회식이 있었던 본부장 일정에 따라
속풀이용 도다리쑥국으로 메뉴를 급변경한 뒤 예약한 곳이 허영만의 백반 기행에 소개된 집이며 쑥향이 향긋하다는 갖가지 추임새를
곁들여가며 식사를 마쳤다.
경황이 없어 음식사진은 없고 얼마전 토리 아빠가 왔다간 흔적이 있었다.
근처의 카페는 한옥을 개조한 집이었는데 볕이 좋아서 마당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할 수 있었다.
마침 금요일이기도 해서 업무 얘기는 넣어두고 일상과 가족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불편했던 임원이 동네 큰 형이랑 이야기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조금씩 경계를 풀고 속내를 담은 입을 떼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회사원들 얘기 중 빠지지 않는 소재인 노령화와 본인만의 자산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남자가 나이 먹고 돈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는 절대법칙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래서 임원은 자신의 어머니께서도 아들이
남부럽지 않은 대기업 임원임에도 적잖은 돈을 주시면서 '남자가 그래도 자기만 간직하고 있는 돈이 있어야 한다.'라며 말씀하셨던 일화를 소개하길래 나도 '우리 어머니도 말씀은 그렇게 하시는데 돈은 안 주시더라고요'라고 대답하면서 같이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 가까워진 임원이었는데 2주일 뒤 모친상 소식을 알려왔다.
식사 때 어머니 일화를 나누면서 웃고 그랬던지라 더 마음이 쓰이게 되어 빈소를 잠시 찾았는데
이 장소에서는 임원과 직원이 아닌 상주와 조문객으로 그리고 아들과 아들로 만난 것 같아 어머니를 여읜 임원이 안쓰러웠다.
어버이날 무렵 찾은 임원의 모친상 빈소에서 내 부모님은 돌아가시면 어쩐다 하는 숙제를 안고 돌아선다.
feat. 종로구 누하동 서촌통영, 창선동 부트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