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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컨 May 22. 2022

카이센동과 뒷담화

3월부터 점심 한 번 하자고 했던 동료들인데 코로나에 재택근무에 미루고 미루다가 얘기 꺼낸 지 두 달이 다 되어서야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동료라고 하지만 열다섯 살에서 스무 살 차이가 나고 게다가 여성이라 내가 더 조심스럽기도 해서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사전에 파악을 한 다음 서울역 근처 의외의 공간에 있는 스시맛집에서 동료들에게는 특초밥을 추천해주고 난 카이센동을 골랐다.

특초밥이 시그니쳐 메뉴이긴 하지만 난 다이어트 중이라 밥까지 다 먹어야 하는 초밥 대신 카이센동을 골라 위에 있는 생선회만 건져먹었다.


회사에서 식당까지 십 분여 걸어가는 동안 '점심 한번 같이 먹기 힘드네요'라는 인사말을 떼며 근황 토크로 이어가려고 했는데 오전 근무 중에 맺힌 게 많았는지 한 친구는 계속 씩씩 거리고 있었다.

식사시간이라 업무 얘기보다는 가벼운 개인생활 얘기를 주제로 삼았으면 좋겠는데 분을 가라앉히질 못하는 동료여서 왜 그러는지 어디 한 번 들어보자고 했더니 대뜸 팀장 욕을 한 보따리 풀어놓기 시작했다.


팀장과 비슷한 연배인 나인지라 그게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은 머쓱한 분위기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팀장에 대한 앵그리 포인트는

까라며 까라는 식의 밀어붙여 마인드, 될지 말지를 왜 네가 고민하니? 일단 착수 닦달 마인드, 그리고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배경 설명 스킵에 있었다.


세 가지 중에 제일 공감했던 것은 배경 설명이 없는 업무지시였다.

내가 어렸을 땐 업무지시가 있으면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보다는 언제까지 하면 될까요?라는 질문만 하고 일단 해놓고 나서 수정을 거듭해가며 왜 이 업무를 해야 하는지 이유를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왜 해야 하죠?라는 질문이 되바라져 보이는 건 아닐까 하는 MBTI 'I'성격과 더불어 위에서 다 알아서 결정하고 지시를 했겠지 하는 상명하복 마인드의 결합에 따라 업무 배경보다는 속도에 주안점을 두었는데 MZ들은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내 경우에는 업무 시작부터 동료들이 의견을 내도록 유도하지만 문제는 의견 반영이 안 된 지시가 내 위에서 떨어지고 그걸 후배 동료들에게 일단 시작하자고 할 때 발생한다.


대개는 '나라고 이러고 싶겠니?' 하는 같은 입장이니 동병상련 모드로 이해를 해달라고 하지만 일부는 '아니 왜 그런 지시를 그냥 듣고 오세요? 안되는 거 모르세요? 그럴 땐 이건 이래서 안 된다고 딱 잘라서 말씀하셨어야죠 암튼 난 못해요!'라는 대답을 해서 입을 턱 막히게 한다.  


밥 먹는 내내 각자들이 겪은 팀장 지시에 대한 불만사례가 모이고 모여 사시미 모리아와세(刺身盛り合わせ, 모둠 사시미)가 아닌 빡침 모리아와세를 만들어 내고 있었고 빡침은 팀장의 인성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번져서 사시미칼에 난도질당한 생선살 마냥 팀장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feat. 서울역과 남대문 사이 비스트로 잉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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