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럴까?
청국장을 먹으면 영혼이 달래지는 느낌이다.
토요일 점심을 엄마와 함께 했는데 주중 회식 때 숙취가 주말까지 남아 있어 청국장과 콩비지로
영혼도 달래고 쓰린 속도 달랠 수 있었다.
청국장에는 보리밥도 함께였는데 미끄덩미끄덩 보리 알갱이와 아삭아삭 나물들로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입안에 머금는 것 같아 좋았다.
이런 맛집은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나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뜨내기손님으로 붐비지 않도록
꼭꼭 숨겨서 지역 주민들에게만 사랑받는 맛집이길 소망한다.
용인 성복역 행복청국장의 보리비빔밥정식 (1만원)
엄마를 만나 한 시간여 식당까지 운동 삼아 걸어가면서 한 주간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업무 미팅으로 거래처에 갔다가 우연찮게 초등학교 동창을 만난 얘기, 동료가 사는 이태원 해방촌 옥상 파티에서 과음한 얘기를 나누다가 더 이상 소재가
없을 때 언제 한번 꼭 물어봐야지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엄마 그때 외삼촌이 엄마 꺼까지 납골당 한다고 한 거 하셨어요?"
내 나이 사십이 넘고 엄마 나이 칠십이 넘으면서 어렸을 적엔 쉽게 꺼내지 못했던 죽음을 맞이 하는 얘기를 이젠 사무적이고 건조하게 꺼내 물었다.
엄마는 그때 한창 외삼촌이 형제들이 같이 안장할 수 있는 납골당을 한다 어쩐다고 했지만 흐지부지 되었다며 말이 나와서 말인데 엄마는 수목장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대답한다.
그렇게 주말 한 낮 점심 먹으러 한참을 걷는 모자(母子)는 죽음에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다.
강수연 배우가 저렇게 죽을 줄 몰랐으며 그 주변인들도 그럴 줄 몰라 영정사진 하나 준비가 안된 점
옛날에는 환갑이 넘으면 비싼 수의를 맞춰 놔야 장수한다고 믿었다 하면서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수의를 맞춰 입은 얘기를 하며 식당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본인 영정사진으로 어떤 게 좋을까 휴대폰 갤러리에서 사진 몇 장을 찾아봤다고 하면서 이런저런 사진을 보여주는데 얼마 전 큰 애 학생증 사진을 찍던 스튜디오가 생각이 나서
다음에는 엄마랑 거기 가서 조명도 켜놓고 해상도 높은 전문 카메라로 영정사진인데 프로필 사진 인듯한 느낌으로 밝고 환한 웃음을 담아 사진 찍자고 약속했다.
엄마는 죽어서 납골당에 가면 갇혀 사는 것 같아 싫다고 하면서 수목장을 얘기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 생각으로 죽으면 자손들 마음에만 남아 있으면 될 뿐 굳이 납골당이나 수목장 같이 물리적으로 기억해야 할 장소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얼마 전 해운대 동백섬에서 그 옛날 최치원 선생도 그 경치에 반해 해운대라는 이름을 돌에 새겨
유적으로 남겼는데 그렇게 경치 좋은 동백섬 앞바다에 나 죽으면 화장해서 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한 유해를 바다에 뿌리는 건 불법이라 한다.)
내 기일이 되면 자손들이 따로 제사상 차릴 필요 없이 SRT 타고 부산 내려와 웨스틴 조선호텔
에서 숙박하면서 호텔 조식 뷔페 먹으며 내 생각하면 얼마나 좋겠냐 하는 엉뚱한 얘기에 엄마는 "쓸데없는 소리 하네!" 라며 입을 막아 버린다.
죽으면 뿌려지고 싶은 동백섬에서 바라본 해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