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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쫌생일기

€117 참 친절한 파리 역무원

by 던컨


일요일 아침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는 전철을 타야 하는 생 미셸역은 한적했다.


예약한 베르사유 투어시작 시간은 9시 이고 지금은 7시 45분이다.

생 미셸역에서 베르사유 까지 전철로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 표를 사고 전철만 타면 여유 있게 도착할 거라 생각을 했다.


키오스크에서 영어로 변환해서 네 식구의 티켓을 사려는데 어디 유럽의 키오스크가 한국의 그것만큼 손가락 터치에 민감하고 신속하게 반응할리가 있겠는가?

느려터진 기계에 왕복, 네 명과 같은 이런 조건을 입력하다 보니 5분 정도 지체를 한 것 같았는데 마침 역무원이라고 하면서 발권을 도와주겠다고 영어로 말을 걸어와 반가웠다.


"저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베르사유 가는 거죠?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 네네 감사합니다."

역무원이라고 하는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남자였는데 가슴에 있는 명찰 목걸이를 내밀어 보이며 자신을 밝혀서 의심 없이 우리 식구 네 사람의 발권을 그에게 맡겼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건 키오스크 화면에 향하는 그의 왼손 검지였는데 손톱에 새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다. 손발톱은 청결해야 한다는 내 기준과 많이 달라 눈에 띄었던 모습이었다.


키오스크는 계속 버벅거렸고 그는 다른 기계에서 발권을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조금 더 구석진 곳으로 우리 가족을 이끌었다.


구석진 키오스크 앞에서 그는 현란한 스크린 터치를 보였다.

"자자 베르사유 가시고, 네 명 이시고, 왕복이시니

자 여기 있습니다. 티켓 네 장"

하면서 그는 키오스크에서 꺼낸 티켓을 내게 주었다.


한 치의 막힘없이 능수능란한 모습에 놀랐는데 더 놀란 점은 때가 잔뜩 낀 그의 왼손 검지가 가리키는 화면 내 가격이었다.


'€117'


그는 마치 프리젠터라도 된 양 왼손은 화면을 오른손은 내게 내밀며 또박또박

"원 헌드레드 세븐틴 유로 온니 캐시" 라며

발음하고 있었다.


나는 '어? 어? 좀 이상한데 신용카드가 안된다고? 그리고 117유로라고?' 하면서 지갑에서 20유로를 하나하나 세어가며 다섯 장을 세다가

참고 있던 말을 뱉었다.


"이건 내가 알고 있는 가격이 아니에요

너무 비싼 것 같아요"


내가 아는 전철 가격은 1인당 편도 5유로가 채 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117유로라니 말이 되나 하면서도 지금까지 그의 호의에 반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나긋하게 반항을 했다.


"아니 베르사유까지 간다면서요?

이건 전철이 아니라 기차예요 기차 그리고

왕복표니까 117유로 나온다고요

Don't worry I'm working here"


자신이 차고 있는 명찰을 내세워 가며 설득을 하는 그의 모습에 그제야 난 그의 정체를 확신했고 그러고 나니 나의 달라진 어조가 그에게 향했다.


"No! I worry Who are you?"

하면서 나는 그의 명찰 목걸이를 앞뒤로 확인했다.


명찰은 그냥 파리 시내 교통카드였고 지금껏 친절한 역무원이라고 믿고 있던 그의 모습이 관광객이나 등 처먹는 한심한 부랑아로 보였고

자동적으로 때가 낀 손톱도 이해가 되었다.


"도와준 건 고마운데 이 티켓은 필요 없어요

내가 직접 표를 발권해서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내 손의 티켓을 그에게 돌려주며

나는 입으로는 감사하다고 하면서 눈으로는 꺼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더 이상 먹힐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알겠다면서 어디론가 사라졌고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 한 장 한 장 티켓을 발권을 했다.

티켓은 1인당 왕복 8.4유로였고 네 식구 다 합해도 33.6유로였다.


사기를 친 가격도 가격이지만 내가 직접 발권을 해보니 키오스크에서 티켓이 아주 아주 느리게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

방금 전 그가 내게 건넨 티켓 네 장은 전광석화 같이

나왔는데 말이다.

여행지에서 바보 같은 먹잇감으로 보여 117유로를 뜯기기 전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는 안도감에 힘이 풀렸고 어찌어찌하여 전철 플랫폼으로 향했다.


진짜 파리 역무원은 형광색 조끼를 입고 있었고

베르사유 가는 전철 플랫폼이 여기 맞냐는 내 영어 질문에 심드렁하게 대답을 했다.


"O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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