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비행기와 관련된 곳은 결점 없이 완벽한 모습들 뿐이어서 어쩔 때는 신성한 곳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 옛날에는 해외에 드나드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어서 가족이나 친척이 출입국을 한다고 하면 큰 행사인양 온 식구가 배웅과 마중을 위해 김포공항으로 나섰다.
그렇게 찾아간 공항은 으리으리한 모습도 모습이지만 반짝반짝 광이 나는 대리석에 바퀴가 달린 가방을 끌고 공항을 누비는 사람들은 당시 용어로 지구촌을 누비는 비즈니스 맨이나 여유만만한 찐부자로 어린 눈에 보였다.
공항뿐만 아니라 어린 눈에 경외시 했던 모습은 비행기 기장과 승무원이었다.
훤칠한 키의 기장 아저씨들은 서로 대화를 하면서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한 손으로 끌고 가는 검은색 여행용 가방은 아저씨들과 한 몸인양 흐트러짐 없이 쫓아가고 있었다.
절도 있는 기장 아저씨들이 멋있긴 했지만 공항이라는 장소에서 가장 선망 받는 사람은 승무원이었다.
TV에서 봤던 미스코리아보다 훨씬 더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미모도 미모지만 상냥한 태도, 센스 있는 응대를 능수능란하게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비행기와 관련된 무결점의 완벽한 아이콘은 승무원이라고 여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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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늘 젊고 예쁜 사람들이 모인 승무원이란 직업을 엿보는 것 같아 주말 아침 놓치지 않고 드라마 "짝"을 찾아보는 나는 대학생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취직을 하면서 해외를 갈 기회가 잦아졌는데 어린 시절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승무원의 기내 서비스를 받아보면서 기내식과 음료를 제공하는 그분들께 그저 감읍할 뿐이었다.
멀리서 기내식 카트가 다가오면 자리를 정리하고 차분하게 식판을 내려놓은 다음 눈치껏 메뉴와 음료는 어떤 걸로 할지 마음속으로 정하고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하는 질문이 끝나자마자 내 마음속 결정을 말했다.
공손히 받아 든 식사와 음료는 꿀맛이었고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고는 하얀 냅킨으로 덮어서 수거할 때 깔끔하게 보이고자 노력했다.
해외 여러 나라를 거침없이 다닐 수 있어 부럽기만 했던 승무원이란 직업에 대해서 이런저런 유형의 갑질 이슈가 터지면서 마냥 좋지만은 않고 때론 힘들겠다고 생각한 건 내 나이가 마흔이 넘고 나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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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족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탑승구를 지나 내 좌석번호를 찾아갈 때였다.
"기내용 가방은 기내 선반에 올려주세요옹!"
'주세요용?'
분명 승무원분이 한 얘기였는데 콧소리가 가득한 "용용" 발음을 승무원분한테서 듣기가 어려운지라 그분을 쳐다봤다. 사십 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분이었는데 여유로운 표정과 행동으로 복잡한 탑승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바빠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이륙 후 식사 시간이 되어 기내식을 받게 되었는데 아까 그분이 우리 구역 담당이신지 다시 마주하게 됐다.
"불고기 쌈밥과 닭고기 중에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용?
아 쌈밥이용?
여기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용!"
다시 "용용" 멘트를 들으면서 매뉴얼을 극복한 연륜의 노하우가 이런 거구나 싶었고 사 학년 구반인 내가 회사에서 하는 모습과 다른 것 같지 않아 어색하면서 반가웠다.
그러고 보니 기내의 승무원 대부분이 마흔은 훌쩍 넘어 보이는 분들이었는데 승무원=젊다는 내 어릴 적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라 기억에 또렷히 남아 이렇게 글로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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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는 뉴스에서만 보거나 40대 이상이 70%인 우리 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항공사 승무원도 다른 것 같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예전에는 젊은 승무원분들이 매뉴얼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고 하면 앞으로는 시니어 승무원분들이 엄마의 마음으로 케어를 해주실 것 같다.
까불다간 등짝 스매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