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킹맘 강사이야기 13
모든 것이 멈추다.
경험이란 최고의 선생님이다. - 토마스칼리
2019년 겨울은 내게 새로운 시도. 확장의 시간이었다. 강사의 영역을 넓혀가기 위해, 내가 현재 머무는 지역보다 좀 더 큰 지역에서 강의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 강사지원 공고는 겨울 11월에서 그다음 해 1월까지 이어진다. 나는 2020년 나의 강사 활동 확장을 위해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12월 이력서를 낸 곳 중 몇 군데서 면접 연락이 왔다. 면접은 1월에 이뤄졌고, 치열했다. 아무래도 처음 다른 지역의 수업 이력이 없는 나는 몇 군데는 떨어졌고, 두 군데서는 붙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강사 면접장에 가면, 정말 그 분위기가 대학 시험장 같다. 긴장되는 분위기 말이다.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기 위해, 바리바리 싸 온 짐부터 시작해서 각자 외모로부터 풍기는 어떤 마성의 분위기 같은 것 말이다. 큰 도시지역은 역시 분위기부터 다르구나 싶었다.
큰 지역 강사들의 면접이 치열한 이유는 아무래도 강사료다. 내가 있는 지역보다 수요도 물론이거니와 강사료가 이런저런 걸 따지면 2~30% 더 좋았다. 그런 것이 아니어도 아무래도 더 멋진 커리어가 쌓일 수밖에 없다. 여튼 1월까지의 치열한 면접을 통해 2020년 새 학기 스케쥴도 잘 짜졌다. 이제 3월부터 잘 시작만 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나는 2월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예약해놓은 상태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잘 진행이 되고 있었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일까. 작년 12월부터 슬그머니 중국 코로나에 대해 우려하고 있던 말들이 점점 우리나라로 퍼지고 있었다. 처음 듣도보고 못한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모두에게는 생전 처음이었기에 나라 안팎은 참 어지러웠다.
혹시나 해서 학교에 전화하니, 이 정도의 우려는 괜찮다며 아직까지는 3월 정상적으로 학교가 운영될 거라 했다. 나는 해외여행을 예약해놓은지라 어쩔 수 없이 2월 초 우리 가족 생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갔다. 물론 내 개인적으로는 몇 번 가본 적이 있었지만, 가족과 다 함께 떠난 적은 처음이었다. 해외에서 들어오기 하루 전날 가이드가 한국방문객에게 그랬다. “한국이 코로나가 심상치가 않네요. 신천지를 통해 지금 70명 이상 확진되었답니다. 돌아가시면 조심하셔야겠어요.” 정말 그랬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갑자기 걱정되었다.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정말 한국은 여행을 떠나기 전과 완전 다른 분위기였다. 80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고, 이어 교회 발 확진자가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2월 말, 학교 및 내가 수업하는 모든 교육기관에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로 모든 수업이 휴업이다. 학교는 비대면 수업으로, 성인대상은 무한 연기로 그렇게 졸지에 백수가 되었다.
어느 누가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를 예상할 수 있었을까? 예상치 못한 전개가 나를 백지상태로 만들었다. 강사라는 직업 자체가, 배움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열정적이고 가슴 뜨겁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일이다. 게다가 사람이 모여야 이뤄지는 것이었으니 코로나는 사람들이 모이면 안 되는 이 시대와 완전 반대집단이다.
3월부터 그렇게 난 백수가 되었다. 쉬면 참 좋을 줄 알았는데, 마음이 편해야 진정한 휴식이 될 텐데, 마음 편하게 쉴 수가 없었다.
내가 유지하고 있던 모든 시스템이 다 무너졌다.
내가 하던 일이며, 운동이며, 만남이며…….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세상에 다 뺏겨버린 기분이었다.
허탈함이었을까? 내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참 아찔했다. 매일 난 산을 올랐다. 내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걷고 걸으며 또 생각했다. 그동안 바빠서 많이 산책하거나 걸을 일이 없던 난, 이때부터 등산과 산책을 통해 많이 걷기 시작했다. 걷기를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을 천천히 보고, 느끼며 치유를 했다.
그래,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뭐라도 더 많이 배우자.
내 생각에 대한 답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고, 내가 손대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다시 배워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생각해본 것은 가계부시스템이었다. 수입이 줄었으니,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내 가계부시스템을 다시 점검해야 했다. 엉망이었다. 돈을 벌줄 만 알았지, 제대로 관리가 안 되었다. 밴드를 살펴보니 가계부밴드가 눈에 띈다. 와, 세상에나. 다들 저축률과 가계부 관리가 엄청난 사람들을 보면서 그동안 정말 내가 헛살았다는 것을 반성했다. 되는대로 소비했던 나를 말이다. 별달지니밴드에 가입하게 되었다. 이분들은 가계부, 걷기를 프로젝트로 하고 있었고 주식정보를 공유했다. 요즘 내가 하는 것들이기에 이때부터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이런 코로나 시대에서는 왠지 제일 가까운 동무, 동료같이 여겨졌다. 이분들께 정말 많이 배우고, 힘을 얻었다.
주식을 공부하고 부동산을 공부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세상은 위기였는데, 아주버님이 부동산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매매하고 있었다. 몇 달 지나니 가격이 그렇게 올라가고 있었다. 부동산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뛰어들며 청약을 했고, 부동산을 사게 되었다.
줌을 공부했다. 도서관에서 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생전 처음 보는 줌이란 것으로 수업이 이뤄졌다. 글쓰기도 하고, 새로운 시스템으로 수업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수업하며, 줌 시스템을 공부했다.
동영상 제작을 공부했다. 직접 수업을 할 수 없으니, 집에서 수업하는 나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고, 편집하는 것을 공부했다.
그랬다. 나는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공부했다. 가계부, 부동산, 주식, 비대면 수업의 장치들인 줌, 영상 편집 등등 말이다. 나중에야 든 생각이지만 이 시기가 나를 가장 크게 만들어준 때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 면에서는 그동안 많은 성장이 있었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영 까막눈이었다. 정말 어쩌면 자기 길밖에는 모든 것을 몰랐던 무지였다.
이 시점을 통해 나는 좀 더 지혜롭게 사는 방법을 배웠다.
세상은 늘 내게 배움을 주는구나
위기 또한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니,
늘 이 모든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겸허하게 마음의 문을 열며 살자.
귀를 열어 세상의 작은 소리도 귀담아듣고,
눈을 크게 뜨고 모든 것들을 시선에 두자.
수많은 사람에게 다시 배우고, 나를 성장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