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by 마음혁명가

이제야 아버지를 이해합니다


✦✦✦✦✦


아버지는 군 복무 시절 할아버지의 사주단자로 인해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어머니와 결혼을 하셨고

1남 4녀의 아버지가 되셨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새하얀 머리카락과 하얀 피부를 가진

멋쟁이 할아버지다. 소금으로 이를 닦으셨고 술을 드실 때와 드시지 않을 때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다.

할아버지의 강요로 제대 후 고향으로 오신 아버지는 농부가 되셨다. 힘든 농사를 달래주는 것은 술이라

생각하셨는지 술을 많이 드셨다.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술을 드시고, 술이 깰 때쯤 또 술에 취하셨다.

술을 드시면 평소와 다르게 말씀이 더 많아지셨고 목소리는 더 커지셨다.

건강 문제로 수술도 여러 번 하셨지만 수술 후에도 술을 드시는 일은 반복되었다. 술을 드시는 날은 많아졌다. 나는 깜깜한 밤 혼자 무서움에 벌벌 떨며 술심부름을 자주 다녀왔다.

술심부름보다 더 무섭고 두려웠던 것은 술에 취한 아버지의 큰 소리였다.

어린 나는 술로 인해 달라지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술이 사람을 먹는다’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해야 했고,

아버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시절 아버지 시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몰랐고,

가족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 답답함을 술에 의존해서 견뎌내고 있으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칭찬도 인색하셨다.

졸업식에 한 번도 오지 않으셨다.

하지만 술 한잔 드시면 사소한 것이라도

온 동네 떠나갈 듯 큰 목소리로 자식 자랑을 하셨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은 온통 아버지의 목소리였고 버스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너무 부끄러워 아버지를 못 본 척했다. 상견례하는 날은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실수를 하실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내 마음속에 아버지는 불안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죄송스러운 마음이 많다.

먼 여행을 가시는 날 가족이 함께 하지 못했다.

요양원에 계셨던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홀로 여행을 떠나셨다.


박사 학위를 받던 날 어머니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셨다.


“느그 아버지 있었으면 벌써 온 동네 자랑하고

몇 날 며칠 잔치했다.”


아버지는 정말 그렇게 하셨을 거다.

한잔하시고 계속 자랑하셨을 거다.

읍면동 많은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알았을 거다.


“우리 지현이 장하고 대견하다.”


장인어른 말씀이 거라며 형부가 내게 한 이야기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를 부끄러워했고 미워했던 나 자신이

너무 죄송스러웠다.

노인 그림책 긍정심리지도사 공부 중 빈 의자 기법을 활용하여 마음속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버지!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부끄러워했던

저를 용서해 주세요. 너무 죄송해요.

아버지 가시는 길 아무도 함께 있어드리지 못한 것도 너무너무 죄송해요.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사랑해요.”


‘아버지’를 부르면서부터 목이 메고 눈물이 흘렀지만 마음속의 죄송함을 전하고 나서야

돌덩이처럼 무거웠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경운기를 몰고 논두렁으로 누비시던 아버지,

언제나 아버지 하실 말씀만 하고 전화를

끊으셨던 아버지,

‘홍도야 울지 마라’ 노래를 부르시며 몸을 흔드시던 아버지, 친 손주가 없다고 속상해하신 아버지,

딸 집에 와서도 다음날 새벽이면 집으로 가시려고 준비하시던 아버지,

걸음이 빨라 항상 먼저 앞서 가시던 나의 아버지셨다.


고향에 내려가면 소주와 과자를 사서

아버지께 다녀온다.


“아버지, 막내 왔어요. 잘 지내셨죠?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 사랑해요.”


아버지는 어린 내겐 무서운 존재였고,

학창 시절 내겐 벗어나고 싶은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내게 아버지는 나에게 생명을 주신

감사한 사람이며,

함께 한 추억이 있는 꼭 안아드리고 싶은

사랑하는 어른이다.



작가의 이전글일상을 깨우는 빛, 경이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