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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뚜리 Jan 27. 2024

평생 걷던 길

딸은 보호자였다.

잠잠하던 통증은 그만 심술을  다. 그것도 이틀이나 번갈아 가며 고집을 피운다. 그래서일까? 하루 종일 정신도 멍한 기분. 결국 주은이와 난 가까운 안과를 찾아갔다. 결과는 안압이 조금 오른 모양이다.

그러게...

남자 선생님이었으면 따끔한 충고가 들었을 건데

다행히 여자 선생님 이시다.

그냥 염증으로 인해 안압이 높아진 것 같다고 하셨다.

나는 선천성 시각 장애인,

한쪽만 억지로 보다 보니

남들보다 시야는 좁고 위험하지만

난 자전거 타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내가 자란 곳은 시골 산천리라 차도 많지

않은 곳.

남들보다 위험성은 두 배겠지만, 그래도 나는 좋아했다.

아니 자전거 타고 달릴 때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그런 기분.

그래서 난 포기하기 싫었다.

논에 떨어져도 자전거가 넘어가도 말이지.

그걸 지켜보시던 아빠, 딸이 하도 졸라서

중고로 사 주었지만 그래서 더 늘 걱정은 넘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때의 용기가 어디서 생겼을까 싶다.

아니 그때가 살짝 부럽다.


그렇게 내가 씩씩할 수 있었던 건

아마 3명의 오빠들 덕분인지도 모른다.

막내 오빠는 골목대장이라 날 여왕 럼 대했고,

수업 중 연필이나 지우개가 떨어졌는데 어디 있는지 안보여서 줍지 못하면

그때마다 둘째 오빠가 연필과 지우개를 챙겨주었다.

첫째 오빠는 지금도 그렇지만 9살 차이가 나다 보니 어려운 관계이다.

그런 오빠가 올해 어느덧 갑이다.

지금이야 평균 수면이 늘어나면서 환갑잔치를 안 하지만,

부모님 시대만 해도 갑을 꼭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참 좋았지, 형제와 이웃 간의 사이는

말도 못 하게 돈독했으니 말이지.

지금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지내는 집들이 더 많을거다.

점점 개인 주의라 해야 할까? 그런 듯 싶다.

형제간에도 오랜만에 만나도 서로 휴대폰 보고 있는 걸 보면 조금은 속상하다.

또한, 이런 걸 세대 차이라 해야 할까?

나도 나이는 먹는가 보다, 어느덧 52세니 말이지.

어젯밤 꿈속에 큰오빠가 나왔는데 걱정이 된다.


꿈은 반대일 거라 믿고 싶다.

나도 그렇고 오빠들도 이젠 다들 50대 60대.

참 빠른 세월을 느낀다.

주은이입학한 초등학교는 우리 4남매가 다닌 오동 초등학교.

내가 입학할 때만큼 기뻤고 새로웠다.

이런 멋진 모습을 주은 아빠와 함께 보지 못함이 마음 아프고

괜히 애한테 미안했던 것을 아이는 알까?

절대 기죽지 말라는 엄마의 고집이

옷이고 발이건 고급으로 해 주었는데

성인이 된 주은이를 바라볼 적마다 대견함은 이로 다 표현 못 한다.

운동회도 할머니랑 같이 갔었고 무엇보다 신기한 건

복도에 졸업생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우리 4형제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첫째 오빠와 둘째 오빠는 흑백 사진이고

막내오빠와 나는 칼라였다.

그 속에 친정 엄마는 조금 속상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왜냐면 엄마는 3학년까지만 다니고 못다니신 바람에 졸업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3대가 다니는 학교네.

내가 학교 다닐 땐 멀다 느끼지 않았는데 아이가 다닐 땐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그나마 외할아버지 오토바이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가끔 막내삼촌 차로 등교도 시키고 말이지.


그런 우여곡절  주은이와 시내로 이사 하면서 전학 시키게 됐다.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이 가능했던 건

친정에 지내면서 개미처럼 돈을 모은 덕분이다.

주은이는 자신만의 방이 생겨 좋아하고,

나는 나대로 우리 집이 있어 들뜨고.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만큼 행복했다.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행복 아닐까 싶다. 전학 오자마자 기말시험은 치뤄야 했으니

주은이한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던 새 학교 첫 시험.

그래도 엄마를 믿고 잘 따라와 준 게 참 고맙지.

무엇보다 잘 보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주은이는 늘 배려해줬던 것 같다.

도로를 걸을 때면 차가 안 다니는 쪽에 나를 두고,

무엇보다 팔짱을 늘 끼고 다녔다.

이런 모습에 주은이 친구 엄마는

주은이가 너무 일찍 성숙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고 하는 반면,

엄마와 딸이 항상 친구 같아 보기 좋다는 엄마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 지난 일이네,

지금은 그런 주은이가 대학교 4학년 사회복지과다.

이제는 바람이 있다면,

건강하게 학교생활 잘 마무리시키고

멋진 사회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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